[2002 임오년 歲時記] '壬午年...역사속의 말 이야기'

탄력있는 근육과 미끈하고 탄탄한 체형,뛰어난 순발력과 강인한 체력.말(馬)은 언제나 생동감 넘치고 박력있는 이미지로 다가온다. 12지의 일곱번째 동물인 말은 양(陽)을 상징한다. 태양이 가장 높이 떠 양기가 충만한 때를 정오(正午)라고 하고 오전 11시에서 오후 1시를 오시(午時)라고 하는 것도 이런 까닭이다. 예로부터 말이 남성적 동물로서 왕성한 에너지와 정열적인 활동의 대명사로 여겨져 온 것도 같은 이유다. 신랑이 백마를 타고 신부집에 가던 풍속도 말의 남성적 상징성과 무관하지 않다. 말은 일찍부터 우리의 생활문화와 밀접하게 관련돼 왔다. 역마(驛馬).승마 등 교통용으로 쓰인 것은 물론 군사용 전마(戰馬)와 농경용 생산수단으로도 애용됐다. 말가죽은 신과 주머니로,말힘줄은 활의 소재로로,갈기와 꼬리는 갓이나 관모로,말똥은 마분지(馬糞紙)로 불리는 종이의 원료와 땔감으로 사용됐다. 요즘은 말고기를 먹지 많지만 조선시대까지만 해도 말고기는 식용으로도 큰 비중을 차지했다. 특히 궁중과 관아의 수요가 늘면서 제주에서 건마육(乾馬肉)을 공물로 바치게 하기도 했다. 정월 첫 오일(午日)을 "말의 날"로 정해 말에게 일을 시키지 않고 좋은 음식을 먹이고 쉬게 했다. 또 이날을 장 담그는 날로 삼기도 했다. 말이 좋아하는 콩이 장의 원료라는 게 이유다. 10월 상달의 "말날"에는 붉은 팥떡을 마구간에 차려놓고 말의 건강을 비는 치성을 드리기도 했다. 신화,전설,민담,속담,민속놀이 등에도 말이 자주 등장한다. 특히 "삼국사기"나 "삼국유사"에는 말이 성인이나 국조(國祖)의 탄생을 알리는 영물(靈物)로 그려져 있다. 동부여의 금와왕은 말이 알려준 돌 밑에서 나왔으며 신라의 박혁거세도 말이 전해준 알에서 태어났다는 이야기가 "삼국유사"에 실려 있다. 고구려의 시조 주몽은 기린말을 타고 승천했다고 한다. 그만큼 말은 신령스럽고 지혜로우면서 힘찬 동물로 여겨졌다. 윷놀이에서 가장 점수가 많은 "모"가 말을 상징하는 것이나 옛날 사대부 집안에서 자손들의 출세를 위해 백마 그림을 걸어뒀던 일 등은 이런 사례다. 실제로 말은 사람이 타는 동물 가운데 가장 머리가 좋고 순종적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말은 신의의 상징이기도 했다. 백마의 피를 입에 바름으로써 화친을 맹약하거나,충성을 맹세하는 표시로 백마의 피로 제사를 지냈다는 기록을 여러 곳에서 찾을 수 있다. "홍길동전"에서는 도적들이 홍길동을 우두머리로 받들면서 백마의 피를 올리는 장면이 나온다. 세간에는 말띠 여자는 팔자가 세다는 속설도 전해져 온다. 하지만 그것은 근거가 없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견해다. 천진기 국립민속박물관 학예연구관은 "중국이나 우리의 문헌이나 자료에서는 이런 속신(俗信)을 찾아볼 수 없다"면서 "조선시대에만 해도 말띠 왕비가 많았다"고 말했다. 성종의 계비 정현왕후 윤씨,인조의 왕비 인열왕후 한씨,효종의 왕비 인선왕후 장씨 등이 모두 말띠였다는 것.천 연구관은 "말띠에 관한 고약한 속신은 일제강점기때 일본의 습속이 들어와 확산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자동차가 등장하면서 말은 경마장에서나 볼 수 있을 정도로 일상생활에서 멀어졌다. 그러나 강인하고 힘차면서 지혜롭고 믿음직스러운 말의 기상과 정신은 늘 곁에 두고 되새겨야 할 덕목으로 꼽힌다. 서화동 기자 fire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