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3년 걸린 재판인데... .. 金柱永 <좋은기업지배구조硏 소장>

金柱永 작년 말께 수원지방법원은 ''삼성전자 9명의 전·현직 이사들은 회사에 9백2억원을 배상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이와 관련, 한국경제신문 1월4일자 오피니언 페이지에 ''아마가 프로 가르치는 세상''이란 제목으로 법원의 판단은 적절치 않다는 요지의 시론이 게재됐다. 이 글을 쓴 민경국 강원대 교수는 ''삼성전자 재판은 졸속재판이 아닐 수 없으며,일개 법관이나 일개 시민단체가 주관적으로 해석한 정황을 가지고 재판을 하는 것은 소도 웃을 일''이라고 비판했다. 아울러 민 교수는 ''법관이 지적 자만에 빠져 있으며,법원의 판결이유는 모두 법관 자신의 주관적 지식으로서 오류 투성이''라고 단정지었다. 민 교수는 더 나아가 ''경영판단의 불간섭 원칙을 형성시킨 구미의 법관들은 현명하다''고 지적하면서,우리 법관들을 경영판단의 원칙도 모르는 아마추어 취급했다. 물론 법원의 판결이라고 해서 비판이 허용되지 않는 ''성역''은 아니다. 하지만 무려 3년2개월의 재판 끝에 나온 판결을 두고 재판에 관여하지 않은 제3자,그것도 비법률전문가가 ''졸속''이라느니,''오류 투성이 지식''이라느니 하는 식으로 비판할 수 있는지 의문이다. 이번 판결은 판결문만 해도 70여페이지에 이르고,기록전체는 수천페이지에 달한다. 그리고 삼성전자측에서 신청한 증인 3명의 신문을 포함,오랜 시일에 걸쳐 증거조사작업이 이루어졌다. 또 참여연대 뿐만 아니라 삼성전자측에서도 유수의 법무법인을 선임해 쌍방간에 치열한 사실 및 법리공방이 전개됐던 재판이다. ''기초적인 자료도 검토하지 않고 1시간만에 이루어진 부실기업인수 결정 행위는 졸속일리 없고,3년 넘는 세월에 걸쳐 쌍방의 참여하에 이루어진 재판은 졸속''이라는 과감한 단정(!)에 실로 놀라움을 금할 수 없다. 민 교수는 또 ''IMF 위기와 기업의 부실을 예측하지 못했다고 벌을 주고 있다''고 했다. 그러나 이는 판결문에서 ''이천전기 인수에 따른 손실이 IMF라는 특수한 상황에 따른 것일 수는 있으나,이를 인정할 아무런 자료가 없다''고 판시한 부분을 오독(誤讀)한 것으로서,아무리 판결문 해독에 익숙하지 않은 비전문가라 해도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는 부분이다. 민 교수는 ''경영판단의 옳고 그름은 법관에 의해 판단될 것이 아니라 경영권시장에서 가려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구미에서 확립된 경영판단의 원칙도 언급했다. 하지만 아쉽게도 민 교수는 구미 법원에서 확립된 경영판단의 원칙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경영판단의 원칙''이란 이사진이 통상의 노력으로 입수 가능한 주요 정보를 면밀히 조사한 후 회사의 이익을 위해 나름대로 최선의 경영결정을 내렸다면,비록 그 결정이 나중에 실패로 끝났어도 결과에 대한 책임을 지지 않는다는 원칙이다. 즉 경영판단에 대해서는 법원이 무조건 개입할 수 없다는 원칙이 아니다. 그래서 미국 델라웨어주 최고법원은 불과 2시간만에 충분한 자료검토 없이 회사의 매각건을 결정한 트랜스 유니온 이사들의 행위가 경영판단의 원칙으로 보호받을 수 없다고 판단한 바 있다. 현명하다고 칭찬해마지 않은 구미 법관들조차 민 교수의 논리에 찬성하지 않음을 보여준다. 그런데 이번 삼성전자 재판의 하이라이트는 삼성전자측 간부가 증언석상에서 ''이천전기의 인수결정이 충분한 자료가 이사회에 제공되지 않은 상태에서 별다른 대안의 검토 없이 졸속으로 이루어졌다''는 것을 확인한 것에 있다. 자본잠식이 3년째 계속되어 1년 후에는 망할 것으로 보여지는 회사를 불과 1시간만에 인수하기로 한 결정은 ''그룹차원의 지시에 충실한 결정''일 수는 있으나,''회사의 이익에 충실한 결정''일 수는 없다. 민 교수는 ''경영권시장이야 말로 실패한 경영자를 처벌할 수 있는 진정한 프로''라고 결론지었다. 하지만 우리나라에 과연 ''경영권시장''이 존재하는가. 오너의 지시를 충실히 따라 회사에 손해를 입힌 경영진에 과연 시장차원의 제재가 이루어지고 있는가라고 되묻지 않을 수 없는 대목이다. jy537@dreamwiz.com .................................................................... ◇이 글의 내용은 한경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