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급진단 '과열 부동산시장'] (上) '묻지마 열풍' .. 집값 담합

주택시장이 투기판으로 변질되고 있다. 아파트 분양시장은 단기 차익을 노린 청약자들의 놀이터로 전락하고 있다. 기존 주택시장도 가수요자들로 인해 정상 거래가 이뤄지지 않는 등 몸살을 앓고 있다. 집값 급등에 불안을 느낀 실수요자들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 ''잠재적 투기꾼''으로 바뀌어 버렸다. 반상회가 집값 담합의 온상이 되고 집주인은 매매 차익을 한푼이라도 더 챙기기 위해 계약을 파기하는 일도 서슴지 않고 있다. 떴다방(이동중개업소)들은 이 틈을 이용, 프리미엄을 조작해 배를 채우는데 여념이 없다. 건설업체들도 분양가를 최대한 높여 이익을 극대화하는 데만 몰두하기는 마찬가지다. ◇ 가수요 급증 =부동산 전문가들은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는 투기 조짐이 멀지 않아 부메랑처럼 실수요자들의 피해로 돌아올 수 있다며 수요자들의 현명한 처신을 강조한다. 하지만 이러한 충고도 급등하는 아파트 값을 보면 허망해지기만 한다. 지난 8일 마감된 서울지역 동시분양 아파트 1순위 청약경쟁률은 43.4 대 1로 또다시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다. 지난해 12월초 실시된 11차 동시분양 때보다 두 배 이상 높은 경쟁률이다. 문제는 청약자의 상당수가 분양권 전매를 노린 단타족이라는데 있다. 목 좋은 지역의 분양권은 당첨되자마자 1개월 이내에 50% 가량이 다른 사람에게 팔리고 있다. 웃돈을 챙기려는 떴다방과 투자자들이 시장 질서를 어지럽히고 선의의 수요자들마저 투기 대열로 몰고 있는 것이다. 정상적인 분양권 전매를 통해 세금을 제대로 내는 사례는 거의 없다. 당첨자 발표 직후 이를 되파는 데이트레이딩(초단타 매매)도 불법이지만 성행한 지 오래다. 이러다간 주택청약통장 1순위자가 폭증하는 오는 3월말이면 2백만명의 1순위자가 부동산 투기 대열로 내달을지도 모르는 상황이다. 서울 강남구 일원동 모델하우스에서 만난 김상돈씨(35)는 "목 좋은 곳에 당첨되면 최고 1억원까지 프리미엄을 챙길 수 있는데 1순위 청약통장을 누가 썩이고 있겠느냐"며 달아오른 주택시장의 분위기를 전했다. ◇ 가격담합 만연 =기존 주택시장에선 더욱 심각하다. 대표적인 것이 서울 강남권의 집값 담합.이 지역에서는 반상회나 부녀회를 통해 가격을 담합한 뒤 부동산 중개업소에 매물을 내놓는다는게 공공연한 비밀이다. 강남구 대치동 A아파트 주민 윤재오씨(37)는 "가격 담합이 나쁜 줄은 알지만 다른 아파트단지에서도 다 하는데 우리라고 빠질 수 있느냐"고 반문했다. 반상회에서 약속한 가격보다 낮게 매물을 내놓는 집주인이나 싼 값에 매매를 알선하는 중개업소에 대해서는 협박도 한다는 것이 그의 실토다. 가격담합 행위는 다른 지역으로 빠르게 전염되고 있다. 송파구 강동구는 물론 양천구 목동 등지에서도 가격담합 흔적이 발견되고 있다. 최근 한달동안 집값이 주변 단지보다 3천만원 이상 형성된 양천구 목동 B단지가 대표적인 사례다. 지난해 11월말까지만 해도 주변 지역과 시세가 비슷했던 이 아파트 가격은 집주인들의 가격담합 이후 급등했다는게 주변 부동산 중개업소들의 귀띔이다. ◇ 거래질서 붕괴 =정상적인 거래질서도 무너지고 있다. 집값이 급등하자 위약금(계약금의 두 배)을 물고 계약을 파기하는 사례가 속출하고 있다. 특히 서울 잠실 반포 등 저밀도지구와 개포 고덕 등 택지지구에서는 3주 사이에 집값이 최고 7천만원까지 급등하자 매도자들이 계약을 잇따라 파기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강동구 고덕동 동서울공인 한종경 대표는 "매매계약 체결 이후 집주인이 계약금 두 배를 물어 주고 위약한 사례가 서너 건 정도 있었다"며 "집주인들은 집값 상승폭이 워낙 커 위약금을 지급하는데 주저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피치 못할 사정 때문에 계약을 해지하던 이전과는 달리 계약 자체가 ''돈놓고 돈먹기'' 게임이 돼 버렸다. ◇ 떴다방 횡포 극성 =떴다방의 횡포도 극에 달하고 있다. ''프리미엄 조작'' ''미등기 전매'' 등이 이들이 즐겨 쓰는 수법이다. 주상복합 오피스텔의 분양권을 밤샘 줄서기를 통해 확보한 뒤 자기들끼리 사고 팔면서 프리미엄을 높여 뒤늦게 달려든 실수요자들에게 떠넘기는 것은 이제 고전이 됐다. 최근에는 시공사 선정 재료를 가진 재건축 단지의 미등기 전매를 부추기는데 앞장서고 있다. 이들은 먼저 시공사 선정 정보를 입수해 매매계약을 체결한다. 시공사 선정 소식이 언론 등을 통해 알려지면서 가격이 급등하면 이를 바로 제3자에게 넘기고 사라지는 수법이다. ◇ 분양가 급등 =건설업체들의 분양가 인상도 투기 확산에 일조하고 있다. 이제는 건설업체 직원들 입에서조차 ''너무하다''는 이야기가 나돌 정도다. 서울지역 동시분양 아파트의 평당 평균 분양가는 분양 가격이 자율화된 지난 98년 이후 39%나 상승했다. 97년 4백64만원에서 2001년엔 6백49만원으로 급등했? 특히 재건축 아파트값 급등의 진원지인 서초구(1백36%)와 강남구(1백5%)는 평균 상승률의 3배 이상 폭등했다. 이것이 기존 아파트값을 밀어올리는 부작용을 낳고 있다. 조성근 기자 trut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