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여론조사

지난해 10월 서울 등 3곳에서 실시된 재·보선 직후 한 여론조사기관은 사과문을 발표했다. 여당의 승리를 예측했지만 결과는 단 한석도 건지지 못한 참패였기 때문이었다. 16대 국회의원을 뽑는 4·13총선에서도 방송 3사는 메인 뉴스를 통해 일제히 사과방송을 내보냈다. 이 또한 선거관련 출구조사가 크게 빗나가서였다. 연말과 연초에 걸쳐 각 언론사들은 경쟁적으로 대선에 나설 여야 유력주자들의 가상대결 여론조사를 발표했다. 그런데 동일한 대결구도에서조차 그 격차가 0.7%포인트에서 17%포인트까지 천차만별이었다. 유수한 여론조사기관과 공동으로 한 조사인데도 이토록 이해 못할 결과가 나온 것이다. 여론조사의 신뢰성에 또 한번 먹칠을 한 꼴이 됐다. 이는 무엇이든 순위를 매겨야 직성이 풀리고,''빨리 빨리''를 외치는 우리 문화와 무관치 않은 것 같다. 여론조사는 일반 국민이나 특정집단의 의견을 과학적이고 객관적으로 파악할 수 있는 최상의 방법인데 특히 선거때가 되면 그 수치는 대단한 위력을 발휘한다. 당초 여론조사는 상품판매를 위한 시장조사에서 비롯됐다. 이러한 시장조사기법이 정치문제에 대한 여론조사에 이용되기 시작한 것은 1930년대였다. 미국의 통계학자인 조지 갤럽이 당면한 정치·사회적 문제들에 대해 전국적인 의견조사를 실시했던게 효시다. 갤럽은 1936년 미대통령 선거에서 루스벨트가 랜던을 누르고 승리할 것을 예측해 개가를 올렸으나,48년 선거에서는 트루먼 대통령의 패배를 잘못 전망해 망신을 사기도 했다. 부시와 고어가 맞붙은 지난번 대선에서도 홍역을 치렀다. 여론조사가 제각각인 것은 조사시점 설문형태 표본추출방식 등이 다르기 때문이다. 또 자료를 해석하는 시각에 따라서도 변할 수 있다. 올 한해 지자체선거 보궐선거 대선으로 이어지는 정치일정에서 수많은 여론조사가 봇물을 이룰 것이다. 현대정치에서 여론조사는 필수적이긴 하나,그 결과에 지나치게 연연해 하거나 그 의미를 견강부회하는 것은 경계할 일이다. 박영배 논설위원 youngba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