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칼럼] 의료서비스는 복지 아니다..崔洸 <한국외대 경제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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崔洸
건강보험의 직장·지역 재정통합을 1년반 유예하기로,그리고 건강보험 재정적자 축소 일환으로 담배에 부담금을 부과하기로 결정됐다.
재정통합 문제든 재정적자 문제든 건강보험에 대한 작금의 논의가 본질적으로 잘못된 인식과 기조에서 진행되고 있어 안타깝기 그지없다.
의료정책의 가장 큰 문제는 의료가 ''복지''라고 이해되고,건강보험제도가 ''복지제도의 일환''으로 인식되는 데 있다.
의료서비스의 존재는 복지의 존재와 아무런 관계가 없다.
우리나라에서 복지라는 개념을 들어보지 못했던 시절에도 의료서비스는 존재했다.
건강보험이 없던 시절에도 우리 모두 큰 문제없이 질병에 대처해 왔다.
의료서비스를 국가가 관리함으로써 누구나 자유롭게 더 많은,더 좋은 의료서비스를 더 낮은 비용으로 향유할 수 있을 것으로 모두가 기대하고 있는데 이것이야말로 근본적으로 잘못된 인식이다.
국가가 관리함으로써 더 좋은 질의 제품을 더 많이 향유할 수 있다면,의료서비스가 아닌 다른 모든 서비스에 대해서도 국가가 관리하지 왜 의료서비스만 특별히 국가가 관리하는가?
혹자는 의료서비스의 공급이 민간에 맡겨져 있으므로 국가가 의료서비스를 관리하고 있지 않다고 말할지 모른다.
건강보험제도를 통해 우리나라의 의료서비스는 기본적으로 국가관리하에 있다.
국가가 의료 서비스를 관리하게 되면 국가정책은 소득 여하에 관계없이 모든 사람이 최소한의 의료서비스를 받을 수 있도록 하는데 초점이 맞춰진다.
문제는 이러한 정책의도를 달성하지 못하면서 현행 의료보험제도가 의료서비스의 과잉수요와 과잉공급만 만들어 내는데 있다.
의료서비스에 대한 국가정책을 논의하기 위해서는 의료서비스의 본질을 제대로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다.
다른 서비스와 달리 의료서비스는 인간의 생명과 관련돼 있기에 모든 국민이 향유해야 된다고 생각하며,돈벌이의 대상이 돼서는 안된다고 한다.
한번 뒤집어 생각하면 우리 주위에 존재하는 모든 것이 인간의 생명과 관련되지 않은 것이 없다.
공급자가 소비자보다 더 많은 정보를 가지고 있으며,위험대책 마련 과정에서 도덕적 해이 현상이 나타나긴 해도 의료서비스는 여타의 서비스와 결코 다르지도 특수하지도 않다.
의료서비스는 병을 치료하는 것으로서 다른 서비스와 마찬가지로 공급자와 수요자가 있다.
수급이 원활히 되고 양질의 서비스를 계속 향유하는 길은 의료서비스의 국가관리가 아니고 시장기구에 의존하고 시장원칙을 존중하는 것이다.
의료서비스의 수요 공급을 시장기구에 맡길 경우 혹자는 저소득 계층이 의료서비스를 받을 수 없게 될 터인데 이 문제는 어떻게 해결해야 하느냐고 반문할 것이다.
전혀 걱정할 필요가 없다.
이들을 위해서는 현재 의료보호제도가 있다.
최소한의 의료서비스 보장 및 소득 재분배는 의료보호제도를 통해 달성되는 것이며 건강보험제도와는 전혀 상관이 없다.
작년의 경우 건강보험에 2조6천억원, 의료보호에 1조6천억원 도합 4조2천억원의 국고지원이 있었다.
의료보호보다 건강보험에 더 많은 국고를 투입하는 것은 잘못돼도 한참 잘못된 정책이다.
저소득층과 고소득층간에 소득재분배를 하는 제도는 의료보호제도다.
건강보험제도는 건강한 사람과 건강하지 않은 사람간의 재분배 제도다.
국고를 아무리 투입해도 현행제도와 정책기조하에서는 건강보험의 재정적자는 계속될 수밖에 없다.
그러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 의료서비스를 놓고 현재의 국가관리제도를 대체하는 제도를 새로이 구축하는 것이 필요하다.
새로운 대안은 현재의 의료보호제도를 그대로 유지하면서 건강보험이라는 공조(公助)제도에서 탈피해 사(私)보험 자조(自助)제도 그리고 상조(相助)제도로 가는 것이다.
자조제도는 시장에 맡기면 되는 것이고,이를 보완하는 방식으로 지연 학연 기업을 축으로 하는 상조제도를 구축하는 길을 트면 된다.
상조제도는 일견 비효율적으로 보이지만 관료에 의해 운용되는 기계적이고 비인간적인 국민복지에 비해 훨씬 바람직하다.
CHOIK01@chollian.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