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선두기업, 장려와 견제 .. 朱尤進 <서울대 경영학 교수>

지난해엔 반도체가격 폭락,세계경제 불황,엔화가치 하락,9·11 테러 사태와 같은 수많은 악재가 있었으나 한국경제는 시련을 잘 버텨내는 끈질김을 보여 주었다. 그리고 현 경제팀과 산업은행의 일관된 구조조정 노력 덕분에 한국경제는 경쟁국들보다 좋은 성적으로 한해를 마무리할 수 있었다. 기대했던 벤처기업은 각종 ''게이트''를 생성하며 실망을 안겨주었지만,반도체 자동차 철강 조선 이동통신의 선두 기업들은 우리 경제를 떠받쳐 주는 효자 노릇을 했다. 덕분에 한국에 대한 외국투자자들의 신뢰도가 회복되고,증시는 원단부터 힘찬 출발을 하고 있다. 한국을 대표하는 이들 선두 기업은 기술 수출 고용 납세의 측면에서 많이 기여했을 뿐만 아니라 대외적으로 ''메이드 인 코리아(Made in Korea)''의 이미지를 향상시켰다. 외국의 예를 보더라도 한 나라의 경제 수준에 대한 이미지는 불과 몇개 기업으로부터 유래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미국을 대표하는 GM과 코카콜라,일본을 대표하는 도요타와 소니, 그리고 독일을 대표하는 벤츠와 지멘스는 각각 미국 일본 독일 상품들의 총체적 이미지를 세계시장에서 업그레이드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이렇듯 초일류 기업은 국가경제에 실질적 기여를 할 뿐만 아니라 그 나라의 다른 기업에까지 후광효과를 누릴 수 있게 하고 있다. 이런 효과를 생각할 때 우리는 선두 기업에 대해 더 많은 격려를 보내야 한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경제력 집중과 독점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있다. 즉 한 기업이 너무 강해지면 구매와 판매에 있어 독점력을 행사하기 때문에 공급업자와 소비자가 피해를 보게 된다. 따라서 이러한 문제를 막기 위해 선두 기업의 시장 독점화는 적절한 견제를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결국 ''선두 기업을 장려할 것인가'',아니면 ''견제할 것인가''라는 선택을 해야 한다. 이러한 ''1등주의''와 ''평등주의''사이의 딜레마는 경제영역 뿐만 아니라 사회의 다른 영역에서도 찾아 볼 수 있다. 교육에서는 고교입시제와 고교평준화라는 대립이 있으며,사상의 영역에서는 신자유주의와 민족주의의 대립이 있다. 오늘날의 경제 현실은 우리 의도와는 별개로 치열한 경쟁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그리고 오늘의 세계적 경쟁은 당해 국가의 보호를 받던 예전과는 근본적으로 구별되는 국경없는 무한경쟁 시대다. 이러한 환경에서 우리 경제가 살아남을 수 있는 길은 세계적 초일류 기업을 많이 육성하는 길 밖에 없다. 그런데도 국내 기업들 사이의 경쟁을 의식해 선두 기업을 견제하면,전체 기업 역량의 하향평준화를 초래할 수 있다. 뿐더러 국내 기업들 사이에 경쟁이 없더라도 한국에 이미 진출했거나,향후 진출할 외국기업들은 강력한 경쟁상대이기 때문에 장기적 독점체제가 유지되기는 어렵다. 1등기업을 육성한다고 해서 특혜를 줘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이들에 대한 각종 규제와 역차별, 그리고 정서적 반감을 줄여야 한다는 것이다. 공교롭게도 이들 선두 기업의 대부분이 소위 말하는 재벌기업들인데 이들은 과거에 잘못한 점도 있지만,한편으로는 작년처럼 한국경제가 어려울 때 일자리를 창출하고,세금을 내고,외화를 벌어들인 공로도 인정해야 한다. 그리고 재벌기업의 오너들에 대한 편견도 바뀌어야 한다. 오늘날 재벌기업 오너들도 전문경영자와 다를 바 없이 시장에서 냉엄한 평가를 받고 있으며,더 좋은 기업성과를 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포드와 도요타의 성을 가진 창업자 후손들이 아직까지 경영에 깊숙이 참여하고 있는 점도 감안해야 한다. 지난 3년 동안 남미 동유럽 아시아의 경제위기는 선·후진국의 격차를 더 벌려 놓았다. 한국도 선진국 문턱에서 다시 중진국 수준으로 미끄러지는 쓰라림을 감내해야 했다. 그러나 최근 들어 한국경제는 외국투자자들의 주목을 받고 있으며,다시 도약의 기회가 주어졌다. 선진국을 향한 새로운 도전에 선두 기업들이 선봉에 서야 하며,우리 국민도 이들의 든든한 후견인이 되어 다시 한번 한국의 총체적 역량을 세계에 보여주는 한해가 되었으면 한다. wchu@car123.co.kr .................................................................... ◇이 글의 내용은 한경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