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자기 뜻에 안 맞으면 졸속?..金柱永 <좋은기업지배구조硏 소장>

金柱永 삼성전자 임원배상판결을 ''졸속재판''이라고 비판한 민경국 교수의 시론(1월4일자)에 대해 필자가 ''3년 걸린 재판인데…''라는 반론(1월8일자)을 제기하자,민 교수는 다시 ''3년 걸렸어도 졸속은 졸속''이라는 재반론(1월11일자)을 폈다. 민 교수는 필자가 인용한 미국판결(트랜스 유니온 판결)이 ''예외적''인 판결로서 그 해 같은 법원이 내린 판결(게티오일 판결)로써 뒤집혔으며,필자가 이런 예외적인 판결을 경영판단원칙의 표준으로 잘못 이해하고 있다고 했다. 민 교수는 더 나아가 ''이런 예외적인 판결을 그대로 모방하고 있는 것이 삼성전자 판결''이라고 했다. 우리 법관들이 외국판결, 그것도 이미 예외가 되어버린 판결을 그대로 모방했다니 자존심 상할 일이다. 그러나 민 교수가 예외적 판결로 평가절하한 트랜스 유니온 판결은 민 교수가 옹호한 게티오일 판결의 판결문에 두 차례 인용되었을 뿐 결코 뒤집힌 바 없다. 트랜스 유니온 판결은 현재까지도 경영판단원칙에 관한 대표적인 판결로서 미국 회사법 교과서들에도 전문(全文)이 실려 있다. 더욱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은 민 교수가 자신의 논리를 옹호하기 위해 게티오일 판결의 내용을 인용한 부분이다. 민 교수는 ''얼마나 많은 정보를 수집해야 하는가, 얼마나 면밀하게 조사해야 하는가 등은 전적으로 경영자들이 스스로 결정해야 할 사항이지 법원이 개입할 사안이 아니다''는 것이 게티오일 판결의 내용인 것처럼 주장했지만,한 마디로 그 판결문 어디에도 그런 내용을 찾아 볼 수 없다. 민 교수가 아는 게티오일 판결은 델라웨어 주최고법원이 1985년 5월9일자로 선고한 ''로젠블라트 대(對) 게티오일 (Rosenblatt v.Getty Oil Co.)사건'' 판결 말고 따로 있단 말인가. 게티오일 사건에서 법원은 오히려 합병이라는 경영결정의 타당성을 여러 각도에서 심사했다. 즉 이 사건은 법원이 경영진의 결정을 적극적으로 심사한 사례이지,민 교수가 주장한 것처럼 사법적 심사를 거부한 사례가 아니다. 이 사건에서 법원은 오래전부터 합병이 기획되고 추진된 사실,이사회에서 투자은행 전문평가기관 변호사 등 외부전문기관의 의견을 토대로 충분히 검토되고 논의된 사실,합병비율결정을 위한 주식가치평가방식이 법원이 적정성을 인정한 방식으로 이루어진 사실 등을 인정한 후 합병을 위한 이사회결정이 ''충분한 정보에 입각해(informed basis)'' 이루어졌으므로 정당했다고 판단했다. 민 교수가 옹호한 게티오일 판결의 심사기준을 그대로 삼성전자 사건에 대입하면 어떻게 될까. 당연히 삼성전자 이사들의 책임을 추궁하는 판결이 내려졌을 것이다. 왜냐하면 삼성전자의 경우 전문가의 평가나 조언,이사회에서의 충분한 검토나 토의 없이 의사결정이 내려졌기 때문이다. 미국법원 기준대로라면 삼성전자의 경우에는 ''경영판단''이라고 불릴 수 있는 것이 존재하지 않았던 셈이다. 또 민 교수는 트랜스 유니온 판결이 만장일치판결이 아니며,''현명한'' 2명이 반대했다고 했다. 그러나 민 교수가 현명하다고 본 2인의 법관은 ''법원이 경영판단에 개입해서는 안된다''고 믿었기 때문에 반대를 한 것이 아니었다. 이들은 다수의견과 사실판단을 달리했을 뿐이다. 장문의 반대의견을 쓴 맥닐리(McNeilly)판사는 트랜스 유니온 이사들의 경력, 경험, 이들이 경영판단에 이르게 된 상세한 경위에 관해 긴 설명을 한 뒤 이 정도면 입수 가능한 정보에 입각한 결정(informed decision)이라고 보았다. 보통 우리가 법원의 판결에 대해 왈가왈부하는 것을 자제하는 이유는 판결이 증거로 인정된 사실관계를 기초로 내려지는 것이며,그 사실관계를 잘 모르는 제3자가 판결의 당부를 따지는 것이야말로 졸속일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사실관계도 모른 채 판결내용이 자신의 뜻에 맞지 않으면 졸속이고,자신의 뜻에 동조하는 법관만이 현명하다는 것이야말로 주관적인 판단이 아닐 수 없다. jy537@dreamwiz.com .................................................................... ◇이 글의 내용은 한경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