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패경제' 25時] (1) 얼룩진 '亡國病' .. '부끄러운 자화상'

한국의 부패는 구조적이고 총체적이라는 점에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부패가 특정한 한 사람, 한 개 회사, 한 개 조직에 국한되지 않고 정치 경제 사회 전부문에 걸쳐 광범위하게 퍼져 있다. 특히 사회의 중심축에 가까이 갈수록 부패의 정도가 심해진다. 부패는 공정한 경쟁을 해치고 효율성과 합리성을 저해한다. 국가와 사회의 근간을 이루는 법과 제도를 무너뜨리는 위협요소다. 부패한 나라의 정치인과 기업인은 국제 무대에서 제 목소리를 낼 수가 없다. 선진국으로의 도약을 준비중인 한국도 부패를 몰아내지 못한다면 좌절을 맛볼수 밖에 없을 것이란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 거미줄 같은 부패 구조 =부패는 사회의 암이다. 인체에 침투한 암세포가 근처의 건강한 세포를 잡아먹어 결국에는 목숨을 앗아가는 것과 같은 해악을 주는 것이 바로 부패다. 현재 한국의 부패는 분포의 상태나 밀도 측면에서 봤을 때 중기나 말기 암환자와 비슷한 상태라고 전문가들은 진단하고 있다. 패스21이 대표적인 사례다. 이 회사의 로비를 받고 자의든 타의든 도움을 준 사람은 사회 지도급 인사로 3백명을 웃돈다. 국회의원, 정보통신부 관리, 국세청 직원만이 아니다. 경찰 시청 구청의 하급공무원, 건설공제조합 관계자, 서울지하철공사 관계자, 회계사, 심지어 일부 언론사 고위 간부와 일선 기자까지 망라돼 있다. 패스21의 로비를 받은 고위 인사는 자신의 지위나 친분관계를 활용해 이 회사의 검증받지 못한 제품을 사용토록 영향력을 행사한 것으로 검찰은 파악하고 있다. 윤태식씨를 가운데 두고 사방팔방으로 힘깨나 쓴다는 사람들이 줄줄이 엮여 있다. 이용호 게이트도 마찬가지다. 국회의원에서부터 조직폭력배까지 거미줄 같은 조직망을 두고 비리를 저질러 온 것으로 검찰은 판단하고 있다. ◇ 한국은 부패공화국 =한국은 대형 프로젝트가 있을 때마다 항상 비리가 거론된다. 첨단 무기 구매나 전투기 기종을 선정할 때는 예외 없이 로비 의혹이 불거진다. 린다 김씨가 관여한 백두사업에서는 이양호 전 국방장관과 군무원이 구속됐었다. 율곡사업에서도 국제 무기상과 로비스트들의 개입이 밝혀져 무더기 구속을 불러 왔다. 장영자 사건, 최순영 전 대한생명 회장 부인의 옷로비 사건, 한보의 비자금 사건, 경부고속철도 로비사건 등등 헤아리기 힘들 정도다. 1백조원이 넘는 사회적 비용을 치른 대우 사태는 경영진이 치밀하게 회계장부를 조작해온 부패 사건이다. 국내 최고기업으로 평가받는 삼성전자마저 구매부서 관계자들이 납품업체의 로비를 받아 왔다는 사실을 적발해 내기도 했다. 부패는 정치권이나 기업에만 국한된 문제가 아니다. 일상생활에도 깊숙이 파고들어 와 있다. 음주 단속으로 인한 구속을 피하기 어려울 때는 단속 경찰에게 금품을 주어 무마한다. 음식점이나 술집에서는 각종 단속을 피하기 위해 정기적으로 공무원에게 촌지를 뿌리는 경우가 적지 않다. 학부모들은 자녀들을 잘봐 달라고 교사들에게 촌지를 준다. 건설업체들은 아파트 재건축 때 조합에 치열한 로비를 벌인다. ◇ 어떻게 이 지경까지 왔나 =부패가 이처럼 구조적이고 총체적인 사회의 단면으로 자리잡은 것은 규제와 특혜 때문이라는 지적이 많다. 한국정신문화연구원의 이서행 박사는 "1960년대 정부 주도의 경제 개발이 추진되면서 제한된 자원을 배분하기 위해 정부가 마련한 각종 규제나 제한 조치가 1차적 원인"이라고 분석했다. 삼성경제연구소의 이언오 상무는 "1990년대 이후에도 규제 완화를 외쳤지만 불필요한 규제는 오히려 늘어났다"며 "이런 것들이 최근 사건의 한 원인으로 작용했다"고 진단했다. 이 상무는 "꼭 필요한 규제는 해야겠지만 복잡다기한 인.허가 정책, 각 기관에 중복 제출되는 서류들, 애매모호한 각종 규정 등 개선돼야 할 규제들은 여전히 고쳐지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최근 터져나온 일련의 벤처 게이트도 비슷하다. 이영탁 KTB네트워크 회장은 "정부가 벤처기업에 직접 자금을 지원함으로써 로비나 비리가 발생했다"고 풀이했다. 한국의 밀실 문화나 연줄 인사 등도 부패를 고착시킨 원인으로 파악된다. 공정 경쟁보다는 1 대 1 대면에 의한 담판으로 사업을 따내거나 문제를 해결하자는 사회적 분위기도 동시에 개선돼야 한다는 얘기다. 박준동 기자 jdpowe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