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우리와 나 .. 현의송 <농협 신용대표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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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hyun@nonghyup.com
대가족 중심의 농경사회가 붕괴되고 산업화·디지털화가 급속히 진행되면서 우리네 삶에도 많은 변화가 생겼다.
그중 하나가 삶의 중심이 ''우리''에서 ''나''로 바뀐 것이 아닌가 싶다.
농경사회는 서로가 힘을 모으지 않으면 안되기 때문에 가족이나 이웃과 모여 살면서 지니게 된 ''우리''라는 공동체의식이 지극히 자연스러운 것이었다.
그러나 급속한 산업사회로의 이전은 집단의 능력보다는 개인의 능력을 더 중요시하게 됐고 어느 순간 ''우리''보다 ''나''의 비중이 큰 사회가 돼 버렸다.
정보통신 기술과 인터넷의 발달로 이러한 경향은 더욱 강해지는 느낌이다.
요즘 아파트 놀이터에서 들려오는 아이들의 재잘거림이 점점 작아지는 것도 인터넷이라는 자신만의 공간에서 자신에게 맞는 친구와 자신이 필요로 하는 정보를 얼마든지 만나고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세상의 중심은 나''라고 외치던 어느 통신회사의 광고 카피가 소비자들의 반향을 일으켰던 것도 ''나''중심의 사고가 이미 우리 생활 깊숙이 뿌리내렸음을 방증하고 있다.
예나 지금이나 ''나''는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존재다.
다만 나를 표현하는 방법에는 다소 차이가 있는 듯하다.
우리네 선조들이 나보다는 우리라는 공동체 속에서 나를 표현하려 했다면,현대를 살고 있는 우리는 나를 중심으로 우리를 만들려는 경향이 강한 것 같다.
얼마 전 지하철을 탔는데 이어폰을 낀 학생이 내 옆자리에 앉게 됐다.
국제화다 취업난이다 해 외국어가 필수인 세상인지라 차를 타고 가는 동안 외국어를 공부하려나 보다 생각했다.
그런데 학생의 이어폰에서는 찌글거리는 음악소리가 흘러나오는 것이었다.
이 학생의 경우도 지하철을 함께 탄 ''우리''보다는 음악을 듣는 ''나''중심의 사고에 익숙해져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남에게 피해를 끼친 예라 하겠다.
그렇다고 우리 모두가 나를 버리고 남의 눈치만 보며 살자는 것은 아니다.
다만 나 이외의 또 다른 나가 세상에는 너무나 많다는 사실을 이해하고 각자의 ''나''를 배려하기 위해 노력한다면 그것이 곧 ''우리''를 중심에 놓는 것이 아니겠는가.
''우리''라는 단어가 점점 잊혀지는 것 같아 아쉬움이 더해가는 시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