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24일자) 韓부총리의 '학력란 폐지' 발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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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사회의 고질적인 학벌문화 타파를 위해 기업들의 사원채용서류에서 학력란을 없애도록 하겠다는 한완상 부총리 겸 교육인적자원부장관의 국무회의 발언은 문제제기의 방식이나 그 내용에 있어서나,한 나라의 교육을 책임지고 있는 최고위관료의 발상이라고는 믿기 어려울 정도다.
우선 한 부총리의 문제제기 방식은 상식에서 한참 벗어났다는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학벌주의의 폐해를 바로잡고 능력중심사회를 실현하는 일은 국가적 과제임에 틀림없지만 이는 어느 한 정부 부처나 한 개인의 노력만으로 이뤄질 일이 아니다.
이처럼 지난한 과제를 관계부처와의 협의도 거치지 않고 대통령이 주재하는 국무회의에서 불쑥 보고해 풍파를 일으켰다는 것은 국무위원으로서의 자질을 의심받을수도 있는 경솔한 행동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혹여 현실여건은 도외시한채 튀는 아이디어로 인정받으려는 ''한건주의''에서 나온 돌출행동이라면 더욱 어처구니없는 일이다.
국무회의에서 전면 재검토로 결론이 났기 망정이지 자신의 말이 교육문제라면 눈에 불을 켜는 국민들에게 잘못 전달되기라도 한다면 교육분야뿐만 아니라 국민생활 전반에 큰 혼란을 야기할수도 있음을 한 부총리만 모른단 말인가.
더욱 놀라운 것은 ''능력중심 사회''라는 목표에 접근하는 한 부총리의 사고방식이 너무 편협되고 근시안적이라는 점이다.
사회가 다양화되면서 능력이란 개념의 카테고리가 넓어지고 있다고는 해도 학력 이상의 객관적인 검증 잣대는 아직 개발되지 못하고 있는 것이 모든 나라의 현실이다.
그런데도 정부가 기업에 ''학력란을 없애라''''이런 저런 사람을 뽑아라''하는 식으로 간섭한다는 것은 난센스다.
기업의 특성에 따라 채용방식은 얼마든지 다를 수 있고 어떤 대기업에서는 이미 학력을 따지지 않는 등 여러가지 다양한 방식이 도입되고 있다.
기업 내부의 사정도 모르면서 옆에서 참견할 일이 아니다.
우리사회의 학력경쟁과 일류대학병은 그 폐해가 적지않을 만큼 유별난 것이 사실이지만 그로인해 근대화 과정과 국가경쟁력 확보에 큰 도움이 된 측면도 무시할 수 없다.
지식기반 사회일수록 우수인력의 양성은 꼭 필요하다.
한 부총리는 공교육을 살리기 위해 학벌을 타파해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일류대학과 공교육은 얼마든지 공존할 수 있음을 선진국들이 보여주고 있지 않은가.
정부가 나서 학벌타파를 부르짖기보다는 시장원리와 경쟁원칙에 맡겨두는 것이 좋다.
자칫 쥐잡으려다 독깨는 일은 없어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