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패경제' 25時] (5) '전직 은행원이 본 비리실태'

시중은행에서 근무하다 2년 전 명예퇴직으로 그만둔 전직 은행원 K씨의 ''회고''는 국내 금융계의 비리 사슬이 얼마나 뿌리깊은지를 증언하고 있다. 그가 몇년전 은행 영업점 당좌담당을 맡았을 때의 일이다. 지점장이 한 기업의 재무제표를 던져 주면서 당좌계좌를 개설해 주라고 했다. 그 기업은 은행이 정한 ''당좌계좌 개설기준''의 한계선상에 있었다. 그래서 지점장에게 "당좌 개설이 곤란하다"고 얘기했다. 그랬더니 "지점장이 시키는대로 할일이지 웬 말이 많으냐"는 핀잔이 돌아왔다. K씨는 다음날 예금담당으로 보직이 변경됐다. 은행 영업점의 부패구조는 대출과 직접 관련이 있다. 일선 점포장은 한계 기업의 생사여탈권을 전적으로 쥐고 있다. 은행에는 ''지점장 전결한도''라는게 있다. 지점장은 이를 활용해 기업과 ''모종의 거래''를 하곤 한다. 은행의 부패구조는 특정인맥으로 구조화돼 있기 일쑤다. 예컨대 임원이 정치권 등으로부터 대출청탁을 받을 경우 말 잘듣는 지점장에게 이를 떠 넘긴다. 지점장은 역시 고분고분한 대출담당 대리에게 이를 처리하도록 한다. 은행원은 생존을 위해서라도 ''부패구조''에 휩쓸려 들어갈 수밖에 없는 구조다. ''부실대출→부실기업 양산''의 고리를 증폭시켜 한국에 외환위기를 불러온 근인(根因)이 바로 이런 부패 메커니즘에 있었다는 지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