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칼럼] 부패를 보는 원근법..金秉柱 <서강대 경제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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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의 정신적 타락이 씨앗되어 사회기강의 문란을 초래하는 부패,그것에서 해방된 인간 공동체는 가능한가.
''로마 제국 쇠망사''에서 "역사란 인간의 범죄·바보짓·재난의 기록에 지나지 않는다"는 에드워드 기번(1737∼1794)의 말을 따르면 과거는 물론 장래에도 부패의 근절은 어려운 문제일 것이다.
정치집단과 일반 국민의 관계를 도둑떼와 국민들 간의 관계로 빗댄 맨서 올슨(1997년 타계한 경제학자)의 비유가 너무나 적절하다.
마을을 급습한 떠돌이 도둑떼는 한 곳에 오래 머물 입장이 아니어서 왕창 살림을 거덜내는 반면,붙박이 도둑떼는 마을주민의 안전을 보장하고 생업 장려에 힘쓰는 대신,그 대가를 정례적으로 징수하는 방식으로 오래 두고 챙기는 것이 유리함을 안다.
정치집단의 생리를 뜨내기에서 붙박이로 바꾸는 것이 정치의 근대화인 동시에 부패 억제의 첩경이라는 교훈이다.
광복 이후 우리는 자의 또는 타의로 여러 집단들의 통치를 받아오면서 꼬리를 이은 부패 의혹에 익숙해졌다 자유당과 군사정권 시대에도 국정 최고책임자의 친·인척이 연루된 의혹 사건이 줄을 이었다.
민주화 이후 부패 의혹이 증폭해 보이는 것은, 첫째 국민의 기억상실증 탓이고,둘째는 5년 단임제 개헌 이후 여권세력의''붙박이''성향이 엷어지고 야권 생활의 경험이 장기일수록,그리고 장래 재집권 전망이 불투명할수록 ''떠돌이''성향이 짙어진 때문이다.
여·야권 간의 부패 논쟁은 이제 일반국민들 귀에는 ''내가 하면 인정(人情)관계,남이 하면 스캔들''로 들린다.
부정부패에 대해 야당시절에는 공격수가 여당시절에는 수비수로 입장 바뀜이 낯설지 않다.
하늘 아래 완벽한 인격체,숭고한 이상으로 똘똘 뭉친 공동체,그런 것은 없다.
특히 정치권은 현혹적 수사학의 껍질을 벗기고 보면 도덕적 완벽과 이상에서 가장 거리가 먼 인간들의 공연장이다.
여·야의 구별은 주로 입장의 차이일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를 최면에 걸 듯 착각에 빠지게 만드는 제도가 민주주의고,그 계절이 선거철이다.
다수표를 얻어 집권하면 일반적인 초기 증세가 ''우리는 다르다''는 우월감으로 나타난다.
전임 정권은 근본이 달라서 무능·부정·부패했지만 ''우리는 다르다''는 오만감이 팽배한다.
바로 이 때문에 스스로 부패 사슬의 주인공이거나 노예가 되고서도 들통나면 국민이 너무도 인간적인 이야기로 치부해주리라는 어처구니없는 기대에 빠진다.
선·악의 사람이 따로 있는 게 아니다.
정직 명예 성실 신뢰에 값이 있다.
이렇게 사는 사람에게 주어지는 보상과 반대의 길에 들어선 사람에게 돌아가는 보상과 응징을 저울질하는 게 일반적인 사람이고,군자와 패륜아의 길이 갈린다.
그러면 부패 척결은 불가능한가.
방도는 있다.
그것은 정직·청렴을 지키는 이익이 부정 부패의 그것보다 크게 부각되도록 제도와 관행을 바꾸는 것이다.
여기에는 근본적으로 두 가지 길이 있다.
하나는 당장 눈앞에 보이는 부패의 이익을 원천적으로 축소하는 것이다.
관료의 재량권 축소,디지털 정부화,시장의 수급 원활화 등이 여기에 속한다.
다른 하나는 부정부패 행위가 노출되기 쉽게 하고,그 응징의 강도를 대폭 높이는 것이다.
이를 위해 행정의 투명화,벌칙강화 등이 요청되고 특히 정치 권력의 시녀로 전락한 사직 당국의 엄정한 독립성이 핵심 과제이다.
우리의 문제는 굳이 국제 투명성 기구(TI)의 국가별 평가 순위를 인용할 필요없이 부패의 범위와 빈도가 심각하다.
투명한 사회로 갈 길은 아득히 멀다.
그러나 제도의 개편은 한걸음 한걸음 점진적 진화로 다져진다.
정부 신뢰가 콩으로 메주를 쑨대도 못 믿을 만큼 실추되었다.
하지만 오늘 부패방지위원회가 개청된다.
현재로는 권력기관들의 비리를 다룰 수 없고 기소권·수사권도 없는 종이 호랑이지만, 작지만 큰 길의 첫 발걸음이길 바란다.
정권이 바뀌어도 지속적으로 힘을 붙여주어야 할 기관이다.
부정 부패에 관한 한 근본이 다른 사람·집단은 없지만 성향의 정도 차이는 있다.
다수 사람들이 정직과 정의를 선택하도록 제도와 관행이 뿌리내리게 하자.
pjkim@ccs.sogang.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