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 데스크] 선거와 부동산 시장 .. 김수섭 <건설부동산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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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각 정부부처가 2월로 예정된 대통령 업무보고 내용을 발표한 것을 보면 올해가 ''선거의 해''임에 분명한 듯하다.
재정경제부는 농사용으로 효율이 떨어지는 농지 6억평을 공장 레저·위락시설 등의 부지로 돌려쓰는 방안을 제시했다.
건설교통부도 이에 뒤질세라 8백76만평 크기의 천안역세권 신도시가 조기에 개발될 수 있도록 천안~서울간 고속철도요금을 75%나 할인해주겠다고 밝혔다.
10조원을 들여 수도권 제2외곽순환도로를 건설하고 서해안고속도로와 중앙고속도로 주변에 산업단지와 관광단지를 개발한다는 계획도 함께 내놨다.
정부가 이처럼 선심을 쓰고 우리나라를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들겠다는데 이의를 제기할 국민은 많지 않을 것 같다.
하지만 임기말의 대통령에게 보고할 업무계획에 10년후에나 시행될지도 모를 사업을 구체적인 재원조달계획도 없이 떠벌리는 의도가 뭔지 궁금하다.
하기야 2월의 개각을 앞둔 시점에서 어느 장관이 눈치없이 미지근한 정책을 발표하겠는가.
더구나 김대중 대통령이 연두기자회견에서 민주당의 총재직은 사퇴했지만 당원자격은 유지하겠다고 밝혀 이것이 무엇을 뜻하는지 알만한 장관은 잘 알터이다.
선거를 의식한 정책이 반드시 나쁘다고 주장할 논리적 근거는 희박하다.
낡은 방식이긴 하나 경우에 따라선 국가전반에 활력을 주기도 한다.
그러나 현재 부동산 시장을 둘러싼 정치·경제적 여건이 지난 87년 대선 때와 닮은꼴이어서 또 다시 부동산 값이 급등하는 부작용이 되풀이될까 걱정이 앞선다.
우선 경제 여건부터 보자.지난 87년의 경우 ''3저(低)효과''에 힘입어 수출로 벌어들인 자금이 시중에 넘쳤다.
이 돈이 증시와 부동산시장으로 돌아다니며 투기수요를 부추겼다.
지금은 IMF 경제위기 이후 무역수지 흑자가 지속되고 있는 가운데 기업의 투자수요가 위축돼 갈 곳 없는 돈이 투기성 자금이 되고 있다.
80년대초 연 20%대였던 은행 정기예금 금리가 87년에 10%대로 떨어진 것과 IMF 경제위기 이전 10% 안팎이던 정기예금 금리가 5% 전후로 낮아져 돈이 고수익자산으로 몰리는 현상 역시 닮은꼴이다.
정치적 여건도 그렇다.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87년 당시와 마찬가지로 여권 대선후보의 지지도가 열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정부 여당이 의도적으로 밝은 경기전망을 내놓고 지역개발정책을 남발할 환경이 조성된 셈이다.
87년 대선 때 여당의 노태우 후보는 전국 방방곡곡을 유세하며 지역개발 공약을 쏟아냈다.
가뜩이나 주택부족현상에다 부동산값이 들썩거리던 와중이어서 부동산시장을 화끈 달아오르게 만들었다.
몇개월 새 집값이 두배나 뛴 것도 당시의 일이다.
요즘과 87년이 다른 것은 정도의 차이 뿐이다.
87년에는 강원도 심심산골까지 투기열풍이 불었다면 지금은 서울과 수도권 인기지역 부동산에 돈이 집중되고 있는 게 다를 따름이다.
그마저 지자체선거에 이어 대통령 선거전이 불붙으면 어찌될지 모를 일이다.
서울의 강남지역 부동산 중개업자들은 부동산 투기세력에 대한 세무조사의 칼날이 번득이는 지금도 "올해는 선거가 있는 해여서 부동산값이 오를 수밖에 없다"며 집값을 부추기고 있다.
사정이 이런데도 일부 장관들의 안테나는 민생보다는 대통령의 관심과 선거판세에 맞춰져 있는 듯하다.
이젠 유권자들의 수준이 웬만한 ''꼼수''는 다 읽고도 남을 정도로 높아졌다.
정부가 발표하는 허망한 개발계획의 수혜자가 돈 많은 투기세력이라는 것도 안다.
민심이 진정 바라는 것은 ''집과 땅 가지고 장난치는 세력''이 더이상 설치지 못하게 만들 건설적이고 단호한 정책이다.
soosu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