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申相民 칼럼] 내 탓이로소이다

지하경제나 부패를 계량(計量)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이른바 게이트와 게이트가 이어지는 하루하루이고 보면 그런 생각을 해보는 사람이 결코 적지만도 않을 것 같다. 실제로 외국경제학자 중에는 그런 사람들이 없지 않다. 현금거래가 지하경제와 연관이 높다는 점에 착안,자기 나름대로 국민경제에서 지하경제가 차지하는 비중을 계산해 내기도 했다. 미국에서 1만달러 이상을 현금으로 인출해가는 경우 은행원에게 신고하도록 의무화하고 있는 것 등과도 비슷한 시각이다. 국내에서도 1만원권을 가득 채운 사과상자나 007가방을 뇌물로 주고받았다는 선례가 있었던 점을 감안할 때 생각할 수 있는 추계방법이기도 하다. 그러나 지하경제나 부패의 계량화는 실제로 불가능하고 또 무의미하다. 나라마다 화폐에 대한 국민들의 관행이 다르고 또 변하고 있다는 점에서도 그렇지만,어떻게 계산하더라도 객관적인 신뢰성을 확보하기 어렵다고 볼 때 그런 작업이 유용하다고 보기는 어렵다. 경제기자 입장에서 보면 계속 이어지고 있는 게이트와 게이트는 특히 충격적이다. 금융실명제가 정착되면 부패가 어느 정도 줄어들 것이라고 내다봤던 게 얼마나 세상 물정 모르는 철딱서니 없는 생각이었는지….물가불안을 부추길 뿐 아니라 부패의 대형화를 촉발할지도 모른다며 10만원권 지폐발행을 반대했던 것은 과연 현실감 있는 것이었는지,생각해봐야 할 점이 한둘이 아니다. 돈을 받았다면 배를 가르겠다던 사람,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러움이 없다던 대통령 처조카,국정원 차장은 잘 알지도 못한다면서 이용호·이형택 커넥션에 무관하다고 주장했다가 불과 몇시간만에 말을 바꾼 경제수석 등의 사례는 한마디로 신뢰의 위기를 의미하는 것이고,또 위험수위에 와있는 부패를 말해준다. 계량할 수 있는 마땅한 방법이 없기 때문에 지나간 정권과 비교해 부패가 훨씬 심해졌다고 단언하는 것은 논리적으로 무리일지 모르나,오늘은 이 사람 내일은 저 사람의 비리로 이어지는 보도를 접하면서 국민들이 어떻게 느낄지는 너무도 분명하다. 29일 결코 적지않은 폭의 개각이 단행됐지만 그것이 과연 어느 정도의 관심사로 받아들여지고 있는지 생각해봐야 한다. 국면 전환용 개각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게 일반적인 지적이었지만,진정코 우려해야 할 일은 개각까지 했는데도 분위기가 바뀌지 않는다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는 점이다. 대통령 임기 마지막 해이기 때문에 그렇지 않아도 레임덕현상에 따른 공조직의 무력화가 우려되는 마당인데 게이트정국은 정말 걱정이 아닐 수 없다. 오늘 이런 꼴이 빚어진 까닭은 간단하다. 한마디로 말해 힘 센 사람들이 너무 많았던 탓이다. 공적인 조직라인에는 얼굴도 없지만 엄청난 힘을 발휘하는 사람,조직표상의 직위나 직책의 높낮이가 영향력과 일치하지 않는 조직운용이 비리의 연원이 되지 않았는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김대중 대통령은 "큰 아들은 선거 때 (진승현씨가)돈 5천만원을 주겠다는 것을 거절했고,작은 아들은 (진씨의 로비스트인 최택곤씨가)도와달라고 했으나 거절했다"면서 "사실이 이런데도 소문이 돌고 있으니 세상이 참 어렵다"고 경제전문가들과 만난 자리에서 말했다. 대통령의 말이 1백% 정확하리라고 나는 믿는다. 그러나 여기서 진정 중요한 대목은 진승현씨나 그 로비스트가 왜 대통령의 아들을 찾아왔겠느냐는 점이다. 이는 대통령의 처조카인 이형택씨가 엄청난 힘을 행사한 까닭과 이어지는 대목이기도 하다. 맹자(孟子)를 만난 양 혜왕(梁 惠王)이 흉년에 이런 저런 선정(善政)을 했는데도 백성이 늘지 않는 까닭을 모르겠다고 하자 맹자는 이렇게 말했다. 굶어죽은 백성을 흉년 탓이라고 하지 않는다면,다시말해 그것이 혜왕 자신의 탓이라고 생각한다면 천하백성이 몰려올 것이라고. 좋지못한 일이 일어날 때마다 정부를 탓하는 것은 전시대적인 사고방식이고,또 잘못임에 분명하다. 그러나 대통령이나 고위공직자는 잘못된 것은 모두 내 탓이라고 생각하고 또 그렇게 말해야 한다. 오늘의 게이트와 게이트,그 도덕불감증도 결코 예외일 순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