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31일자) 아파트 청약증거금제 안된다

아파트 청약과열을 막기 위해 건설교통부가 ''청약증거금제'' 도입을 검토하고 있는 것은 한마디로 한심한 발상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경기를 부양할 목적으로 1순위자 양산,분양권 전매허용 등을 통해 정부 스스로가 투기과열을 부추겨 놓고는 일부지역에서 과열현상이 나타나자 이를 빌미로 아파트 구입자에게 부담을 강요하는 것에 다름 아니기 때문이다. 건교부에서는 최근 서울에서 분양된 민영주택의 절반정도가 전매되고 있는 상황에서 청약증거금제를 도입하면 그만큼 투기수요는 줄어들지 않겠느냐는 논리를 펴고 있으나 이는 탁상공론에 불과하다. 청약증거금 부과는 현금 동원능력이 있는 가수요자에게 더욱 유리할 수밖에 없어 투기과열 억제효과는 없으면서 실수요자들의 내집마련 기회만 박탈하는 결과가 초래될 게 뻔하기 때문이다. 더욱이 청약증거금제는 수요자 입장을 무시한 행정편의주의적 발상이라는데 문제가 있다. 지금도 아파트 분양제도는 물건을 공급받고 난 후 대금을 지급하는 다른 재화와는 달리 입주 수년 전부터 집값을 선납하고 있어 공급자인 건설업체에 일방적으로 유리하게 돼 있다. 그런데도 투기를 막는다는 명분으로 수요자에게 청약증거금 납부의무를 새로 부과하는 것은 국민불편과 부담을 안중에도 두지 않는 행정편의주의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사실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쳐 오늘에 이른 아파트 청약제도는 건설업자들이 청약자들로부터 돈을 선납받아 아파트를 지을 수 있도록 해줌으로써 주택공급을 촉진하기 위해 도입된 제도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과거와는 달리 주택저당채권 유동화 제도 등의 시행으로 다양한 주택건설 자금확보 수단이 마련된 지금에는 그 의미가 퇴색하고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따라서 아파트 청약과열을 막기 위해 청약증거금제 도입과 같은 땜질식 편법을 동원하기보다는 공급자 위주로 돼 있는 아파트 청약제도를 근본적으로 재정비할 때가 됐다는 것이 우리 생각이다. 소형주택을 무주택자에게 저가로 공급하기 위한 청약저축 제도는 존치시키되 민영주택 분양을 위한 청약예금은 폐지하는 문제를 적극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과거와는 달리 시가로 아파트를 분양받기 위해 수년간 청약예금에 가입해야 하는 것도 모자라 선금을 주고 구입해야 하는 현행 청약제도를 언제까지 유지할 것인가. 주택보급률이 1백%에 육박하고 있는 상황에서도 이런 제도를 계속 유지할 것인지에 대한 진지한 검토가 있어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