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1일자) 은행의 리스크 관리 아직 멀었다

벤처 간판기업인 메디슨이 부도를 낼 때까지 은행이나 신용평가회사가 부실징후를 감지하지 못하고 대응도 소홀했다는 것은 시장의 리스크 관리 시스템에 커다란 허점을 드러낸 것으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기업구조조정촉진법을 만들어 은행으로 하여금 기업을 상시구조조정토록 하고 부실징후기업에 경영개선권고까지 할 수 있도록 권한을 부여했지만 막상 현장 시스템이 낮잠을 자고 있었다는 사실은 안이하고 무능한 위기관리 능력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대목이다. 대다수 은행들은 메디슨을 부도 직전까지 ''정상 여신''대상으로 분류해 오히려 부실여신을 늘리는 결과를 빚었다. 부실징후가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던 지난해 10월에도 거액의 차입금 연장과 운전자금을 지원했고 심지어 부도 한달전에 신규대출을 해 준 은행이 있었다는 것은 기업의 장부를 제대로 들여다보기나 하고 대출을 해줬는지 의심이 가게 한다. 부채규모가 매출을 능가하고 있었고 단기성 차입금의 비중이 70%를 넘어선 상황임을 알고 있었다면 적절한 제동을 걸었어야 마땅했다. 뒷북을 치기는 신용평가회사도 마찬가지다. 한신정과 한기평은 지난해 5,6월 메디슨이 발행한 회사채 등급을 투자적격(BBB)에서 투기등급(BB+)으로 낮춘 뒤 침묵을 지키다가 부도를 낸 후에야 지급불능상태인 D등급으로 발표하는 등 경보 기능에 허점을 보였다. 이처럼 안이한 은행과 신용평가회사의 대응은 수많은 주식투자자와 채권보유자에게 아무런 위험을 알리지 못했고 은행 스스로도 부실을 떠안는 결과를 초래했다. 시장의 리스크 관리 시스템이 제대로 가동돼 미리 미리 경보를 울렸다면 메디슨의 무리한 확장경영에 제동이 걸렸을 것이고 채산성이 나쁜 사업에 손을 대지 않게 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어쩌면 부도란 최악의 상황은 피할 수 있었을는지 모른다. 느슨한 외부감시가 부실의 빌미가 됐다는 점에서 돈을 빌려준 은행의 책임 또한 적지 않다고 하겠다. IMF사태 이후 부실여신 때문에 그렇게 큰 화를 당하고서도 리스크 관리에 이처럼 둔감해서야 어떻게 은행의 기업감시자 역할을 기대할 수 있으며 상시구조조정의 성과를 거둘 수 있겠는가. 은행은 이제라도 눈앞의 성과에만 집착해 영업만 독려할 것이 아니라 고장난 위험관리 시스템을 정비하는데 힘을 쏟아야 한다. 은행과 신용평가회사가 자신의 고객을 냉정하게 평가하고 상대하기엔 여러 제약이 있겠지만 그것을 극복하지 못하면 앞으로 닥칠 화를 피하기 어려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