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칼럼] 북한여행이 관광인가..金榮奉 <중앙대 경제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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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년 여름 금강산 관광사업은 매년 50만명을 보내겠다는 거창한 계획 하에 발진했다.
그러나 3년 반이 지난 오늘 여행객수는 도합 43만명에 미치지 못했으며 작년에는 고작 5만여명을 유치하는데 그쳤다.
이 중에도 그나마 제 돈 다 내고 간 사람은 몇할이나 될까.
돈과 시간을 짜내어 관광여행을 떠난다면 이것은 일상의 구속에서 잠시라도 벗어나 자연과 경관 속에 묻혀 자유로움을 만끽하고 싶기 때문이다.
철조망 쳐진 구석에서 감시의 눈길아래 말과 행동을 속박받는 여행은 고행의 순례길일 뿐이다.
북쪽에 연고와 감상을 가진 사람들에게나 비용과 스트레스를 감내할 가치가 있는 이벤트 방문인 것이다.
안면을 팔아 손님 찾던 월부 책장사처럼 금강산 사업은 한 떼의 순례자가 지나가자 더 찾을 손님이 없게 됐다.
금강산관광사업 패망은 물론 북한이 초래한 결과다.
그러나 현대와 정부는 그 원인을 제공했다.
북한은 어처구니없는 입산비와 관광조건을 수락받았으니 민족의 영산만 보여주면 남한사람들이 돈보따리 싸들고 달려들 것으로 착각했을 것이다.
월드컵 개막과 시기를 맞춰 북한이 다시 아리랑 상품을 개발해 판촉에 나섰다.
예술인 및 청소년학생 등 10여만명을 동원해 '천변만화의 신비경을 이루는 민족예술과 체조와 교예공연'을 선보일 것이니 이 기회를 놓지면 '일생일대를 후회하게 될 것'이라는 것이다.
북한의 공연 방송을 보면 그 작위성과 가면성 때문에 기분이 좋지 않다.
어린이들의 지어낸 웃음 뒤에 숨은 가면성이나 일사불란한 카드섹션과 매스게임,서커스에 낭비됐을 어마어마한 훈련량을 생각하면 짜증과 역겨움이 아니 나올 수 없다.
이제 10여만명의 인민을 볼거리 곰으로 훈련시켜서 관객의 주머니를 짜내려 한다.
그동안 정부는 정경분리원칙의 간판을 걸고 이 사업을 시장에 자생하는 민간사업으로 포장하려 했다.그러나 그 측면작용의 효과가 한계에 이르게 되자,항로를 바꿔 본격적 정부사업으로 정착시켜 나갈 작정을 한 것 같다.금강산 관광사업의 운영주체가 되겠다던 주무장관의 말은 공식적으로 부정됐지만 정부는 남북협력기금을 투입하고,관광객 모집과 관광비 지원 등 이 사업에 직접 나서는 방안을 본격적으로 강구하고 있다.
또한 정부예산의 1%를 항례적으로 북한지원에 쓰자는 제안이 공개적으로 토론되고 있다.
이른바 햇볕정책이 그 동안 이룬 성과를 무시해서는 안된다.
이것은 분명히 남북교류의 확대에 기여했고,나락 직전의 북한경제 회생에 큰 도움을 주었을 것이다.
무엇보다 한반도에서의 전쟁위협을 줄이는데 기여했음에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런데 북한의 요구를 그대로 수용하는 현재의 지원방식이 진정 장기적으로 바람직한 남북관계 형성에 도움이 되고,북한과 그 인민의 장래를 위하는 것인지 생각해 보아야 한다.
우선 대북정책의 대원칙이 북한체제의 변화를 이끄는 데 있음은 자명하다.
북한은 변해야 할 운명에 있다.
정보통신기술의 전파로 세계가 나날이 투명해지고,북한의 유일한 버팀목이었던 중국이 완전히 세계자유시장 체제에 흡입된 오늘날,북한 체제가 발붙일 땅은 없다.
개혁의 결단이 늦어질수록 광속같이 변해가는 세계 속에서 북한의 기회는 그만큼 상실되고,그 인민이 치를 고초와 수모는 커진다.
그런데 북한은 결단을 미루고 이 절박한 세월을 흘려보내고 있다.
탈레반이 쓰러진 후 아프간 같은 전근대체제도 탈바꿈하는데 반도의 북쪽은 오늘도 내일도 그럭저럭 버텨가는 꼴을 보자니 답답하다.
북한 위정자들이 벼랑 끝에 몰려 죽기 아니면 변화를 선택할 계제마다 고개를 돌리면 거기에 남한의 후원자가 대기하고 서있다.
면도날 위에 서는 위험과 '살가죽을 벗겨내는' 개혁(改革)의 아픔을 무엇하러 택할 것인가.
남한의 사탕발림 도움이 북한의 결단을 망치는 독(毒)이 되고 있는 것이 아닌지 생각해 볼 일이다.
소싯적 무위도식하다 형수의 구박에 자극받아 결연히 공부,진나라에 대항하는 6국 합종(合從)의 책략을 성사시킨 공으로 초(楚) 제(齊) 등 여섯 나라 수상이 돼 고향인 낙양성으로 돌아온 소진의 교훈을 새길만 하지 않은가.
kimyb@cau.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