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길에서 만난 고즈넉한 친구 .. '걷기예찬' 번역

아침에 숲속의 오솔길을 걸으면 찬물에 막 세수를 하고 난 것처럼 마음이 맑아진다. 한적한 산길의 고요. 낮은 언덕배기의 골목길을 걸을 때도 우리는 사색과 성찰의 친구가 된다. 정갈한 가르마처럼 들판 한가운데로 난 길은 또 얼마나 포근한가. 프랑스에서 화제를 모았던 철학적 산문집 '걷기예찬'(다비드 르 브르통 지음,김화영 옮김,현대문학)은 길과 인생에 관한 명상록이라 할 수 있다. 표지부터 영화의 한 장면처럼 운치 있는 풍경으로 다가온다. 또 책갈피마다 느림의 미학과 여유로운 성찰의 아름다움으로 가득하다. 저자 다비드 르 브르통은 프랑스 스트라스부르대학 교수.특히 몸에 관한 산문으로 유명하다. 그는 책 머리에서 '발로,다리로,몸으로 걸으면서 인간은 자신의 실존에 대한 행복한 감정을 되찾는다'며 우리의 몸을 먼저 위로한다. 이 책은 걷기의 의미 해석에 목적을 둔 것이 아니라 '생각에 잠기기도 하고 걷기도 하는 그 고즈넉한 즐거움'을 전달하기 위한 것이다. 사유의 여백이 은은하게 깔린 도화지 위로 우리를 천천히 인도한다. 걷는다는 것은 어디론가 떠난다는 것이다. 몸의 바깥으로 떠나기도 하고 스스로의 내면으로 향하기도 한다. 그런 '이동'과 '소통'의 길에서 우리는 날마다 무관심하게 걷는다. 저자의 말에 따르면 '걷는다는 것은 자신을 한곳에 집중하기 위하여 에돌아가는 것'이다. 우리네 삶도 그렇다. '주저해왔던 일을 결행하기 위해 발을 내딛는다는 것은 길건 짧건 어느 한동안에 있어서 존재의 변화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길은 우리에게 '고통스런 개인적 역사와 인연을 끊어버리고 쳇바퀴 도는 것 같은 일상의 길에서 멀리 떨어진 내면의 지름길을 열도록' 해준다. 그것은 '구체적인 걷기 체험을 통해,때로는 그 혹독한 고통을 통해,근원적인 것의 중요함을 일깨우는' 행위이기도 하다. 그 위에서 여행자는 아마추어 인류학자가 되어 창문의 치장이나 집의 모양,손님을 맞는 주민들의 태도,심지어 지방마다 조금씩 다른 개들의 행동까지 예사롭지 않게 관찰한다. 행간에서 장 자크 루소와 피에르 상소,패트릭 리 퍼모,일본 하이쿠의 대가인 마쓰오 바쇼 등 오래된 길동무들을 만날 수 있는 것도 즐거운 일이다. '길 자체에도 근육이 있고 반근육이 있었다'는 가스통 바슐라르의 오묘한 문구에서 오랜 깨달음의 여운도 음미할 수 있다. 숨가쁜 속도의 시대에 잠시 내면을 돌아보게 만드는 힘 때문일까. 40대 남성 독자들,특히 중년 CEO(최고경영자)들이 이 책을 많이 찾는다. 독서광인 박인순 한국스파이렉스사코 대표는 "잔잔하면서도 깊이 있는 문장이 우리들 마음의 산책길과 삶의 여정을 따뜻하게 밝혀준다"며 반가워했다. 섬세한 문체를 맛깔스럽게 옮긴 김화영 교수(고려대 불문과)는 이 책이야말로 '삶의 예찬이요 생명의 예찬인 동시에 인식의 예찬'이라고 말했다. 고두현 기자 kd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