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설날

한국갤럽이 20세 이상 1천5백여명에게 물어봤더니 '설을 쇤다'는 대답이 95.4%에 달했다고 한다. 경제적 부담과 늘어나는 집안일 때문에 반갑지 않다는 답도 있었다지만 설이 민족의 최대 명절로 다시 자리잡은 것만은 틀림없어 보인다. 설에 지내는 차례는 '조상을 간략히 받드는 망참(望參.음력 보름날 사당에 절하고 뵙는 일)엔 차 한잔만 올린다'고 한 데서 유래된 만큼 계절음식으로 정성껏 지내는 게 기본이다. 실제 기제 땐 메(밥) 갱(국) 해(생선젓)를 놓고 술을 세번 올리지만 차례 땐 명절음식(설엔 떡국)과 혜(식혜건더기)를 놓고 술도 한번만 올린다. 지금은 찾아보기 어렵지만 예전엔 설이 되면 대문에 설그림(歲畵)을 붙이고 기둥에 체나 복조리를 걸어 귀신을 쫓고 행운을 빌었다. 설그림은 도화서에서 축수(祝壽)를 맡은 수성(壽星)선녀및 그날의 운세를 담당한 직일신장(直日神將)을 그려 임금의 장수와 안녕을 빌던 것으로 처음엔 대궐문에만 붙이다 척리(戚里:임금의 내외척)집으로 번진 끝에 여염집으로까지 퍼졌다. 대신 민간에선 사기(邪氣)와 역신을 물리치려 갑옷을 입고 도끼를 든 장군이나 무시무시한 형상을 그려 붙였다. 체는 설날밤 야광귀가 들어와 신발(행운)을 훔쳐가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 복조리는 조리로 쌀을 일 때처럼 그해 복을 일구려는 바람에서 걸었다. 또 세배 때나 사람을 만날 때면 적당한 덕담을 건넸다.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에 보면 주로 '과거에 합격하시오' '돈 많이 버시오' 등이었다고 하니 요즘 새해인사와 다르지 않은 셈이다. 세화나 복조리를 거는 풍속은 사라졌지만 덕담을 나누는 건 남아 있다. 올해 설엔 '건강하라' '화목하라'에 더해 뭔가 다른 덕담이나 가슴에 새길만한 말을 곁들이면 어떨까. 공자는 '삼군가탈수 필부불가탈지'(三軍可奪帥 匹夫不可奪志:병사가 많아도 흐트러지면 장수도 잡지만 필부라도 의지가 굳으면 못잡는다)라고 했거니와 '우공이산'(愚公移山:우공이 90세에 산을 옮기려 했다는 것으로 무슨 일이든 꾸준히 하면 이룰수 있다는 뜻)이라는 말도 있다. 박성희 논설위원 psh77@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