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리스크' 감싸안기

종합지수가 이틀째 조정을 보이며 마감했다. 미국 시장이 분식회계 불신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나스닥이 사흘째 급락하자 외국인 매도가 급증했으나 개인 등 저가매수세가 조정매물을 소화하면서 낙폭은 제한됐다. 산업자원부 신국환 장관이 하이닉스 처리와 관련해 더 나아가 '삼성전자와 전략적 제휴' 발언을 하면서 하이닉스가 한때 3% 이상 상승했으나 끝내 하락, 시장의 지지를 얻는 데는 실패했다. 이날 미국의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한미 정상회담에서 한국의 햇볕정책을 지지하고 '북한과 전쟁을 원치 않는다'고 밝혀 '악의 축' 발언에 따른 한반도 내 전쟁 공포감이 확대되지 않아 시장에는 별다른 영향을 주지 않았다. 그러나 부시 대통령은 '대화 해결'을 전제했으나 향후 북미 관계에서 대량살상무기를 현안으로 삼을 것임을 밝혔다. 또 북한의 김정일 국방위원장에 대해 '굶주림을 방치하고 주민들에 애정을 갖지 않고 있다'는 기존의 비판적인 대북관을 고수, '관계 조율 시간'이 필요한 상황이다. 시장에서는 미국 주가의 추가 조정이 잠복돼 있어 국내 주가는 단기적으로 제한된 범위에서 등락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신영증권의 김인수 투자전략팀장은 "국내 증시가 조정에 들어간 시점에서 미국 등 해외여건이 우호적이지 않다"며 "특별히 매도가 급증하지는 않겠으나 단기적으로 응집력이 떨어지며 순환매 장세가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 주가 이틀째 조정, 5일선 하회 = 20일 종합주가지수는 776.89로 전날보다 5.38포인트, 0.69% 하락하며 마감했다. 이틀째 하락하며 5일선 밑으로 떨어졌다. 미국시장이 분식회계 사태로 투자자 불신이 증폭, 나스닥지수가 전날 3% 이상 급락하며 사흘째, 다우지수가 이틀째 하락했다. 이에 따라 외국인은 2,000억원에 육박하는 순매도를 보이며 나흘째 매도우위를 지속했다. 그러나 개인이 1,600억원 이상 순매수하며 사흘째 매수우위를 보이고 기관도 전날 1,530억원에 달하는 순매도 이후 다시 순매수로 전환하는 등 수급안정감은 유지됐다. KGI증권의 황상혁 선임연구원은 "외국인이 나스닥 하락 폭 만큼 순매도했으나 수급악화가 제한되는 등 조정이 견조하다"며 "단기적으로 추가 상승은 제한되겠으나 수급개선을 바탕으로 시장안정감은 유지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외국인은 국민은행 등 은행주를 중심으로 금융업종, 반도체, 전기전자, 석유화학 등에 대해 차익매물을 출회, 삼성전자를 비롯한 SK텔레콤, 한국전력 등 대형주가 하락했다. 국민은행과 신한지주가 2% 이상 빠졌고 삼성전기, 삼성SDI, LG전자 등도 약세를 보였다. 한동안 급등했던 현대차는 5% 이상 급락했으나 기아차는 실적 모멘텀이 유지되며 상승세가 유지됐다. 하이닉스는 신국환 산업자원부 장관의 '삼성전자와 제휴' 발언으로 상승했다가 리스크 우려감에 2% 가까이 하락했다. 하락종목이 467개로 상승종목 334개를 앞섰다. ◆ 미국 리스크 등 해외요인 주시 = 국내 주가는 800선을 앞두고 5일선을 하회, 단기 조정에 들어간 양상이다. 추가 모멘텀이 없는 상황에서 외국인 매도가 지속되는 가운데 미국 등 해외시장 불안이 여의치 않다. 그러나 미국 경기는 나아지고 국내 경기도 내수를 중심으로 개선되고 있다는 점에서 755선대 20일선을 지지하는 수준의 상승기조는 유지될 것으로 보인다. 고객예탁금이 11조원을 넘고 투신사로 자금이 유입되는 가운데 개인의 저가 매수세가 지속되고 매도세도 크지 않은 상태다. 국민연금이 내달부터 6,000억원 규모의 위탁투자 방침도 밝혀 기관의 운용여력도 나아질 전망이다. 그러나 시장이 응집력을 갖기 위해서는 미국과 일본 등 해외시장에 대한 불안감이 해소되야 할 것으로 보인다. 미국의 경제지표가 나아지는 쪽으로 개선되고 있으나 기업실적에 대한 전망이 딱히 긍정적이지 못하고, 또 실적의 기초인 회계에 대한 시장불신이 도를 넘고 있어 투자자들의 불신을 제거하는 데는 시간이 걸릴 전망이다. 미국 나스닥이 전날 3% 이상 급락하며 사흘째 하락했고 다우지수도 이틀째 하락하는 등 미국 시장이 경기회복이나 월마트 등 일부 기업들의 실적 개선을 수용하지 않고 있다. 키움닷컴 증권의 정선호 과장은 "미국시장이 경기회복에도 불구하고 분식회계 의혹이 시장 전반의 리스크로 확대된 상황"이라며 "국내 모멘텀이 빠른 시일에 나타나지 않는다면 저항매물 속에 시장심리가 이완될 공산이 있다"고 말했다. 미국 나스닥지수는 지난 1월 9일 2,000선을 잠시 상회하며 고점을 기록한 뒤 이후 엔론 사태 이후 하락추세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마치 지난해 국내 시장이 1월과 4월의 작은 랠리 속에서 하락하는 듯한 모양새가 그려지고 있다. 특히 회계불신이 확산되면서 19일 1,750까지 하락, 현재로서는 지난해 9.11 테러 이전 수준인 1,700선에 대한 지지대를 확인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다우지수의 경우도 나스닥지수보다는 안정감은 있으나 9,600선에서 10,000선대의 박스권을 넘어서지 못하고 아래쪽 지지선 구축이 필요한 시점이다. 일본 역시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가 미국 부시 대통령한테서 '위대한 개혁가'라는 지지 발언을 얻어내긴 했으나 부실채권 처리나 경제회복 가능성이 크지 않다. 이에 따라 닛케이225평균지수가 다시 10,000선 이하로 떨어진 가운데 달러/엔 환율도 부시 방일 이후 다시 133엔대로 올라서는 등 달러강세 조짐에 처하고 있다. 이같은 미국과 일본 등 해외시장의 불안정성 속에서 한반도를 둘러싼 정치군사적 긴장감도 아직은 해소되지 않고 있다. S&P나 무디스 등 세계적인 신용평가기관에서 한반도 긴장관계를 국가신용등급 산정기준에 포함하고 있어 향후 한미간, 북미간, 남북간 관계 개선의 진전 여부에 대해 투자자들의 관심이 요망되고 있다. 한경닷컴 이기석기자 han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