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여록] 애널리스트만 탓하나?

"만만한 게 애널리스트들인가요" 금융감독원이 증시 투명성을 높인다는 명분 아래 발표한 증권감독업무 강화방안을 전해들은 애널리스트들은 한결같이 볼멘 소리를 내뿜었다. 자신들을 증시에 '색깔'을 입히는 세력인양 매도했다는 주장도 서슴지 않았다. 증권가에선 꽤 유명한 한 애널리스트는 "애널리스트 입지를 강화하는 작업이 선행됐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애널리스트는 고액 연봉자다. 연봉의 대소를 가르는 잣대는 보고서에 대한 평가다. 문제는 증권사가 자신들의 영업에 큰 영향력을 미치는 기관이나 외국인에게 보고서를 먼저 준다는 점이다. 정보의 규모는 물론 시차에서도 비대칭성 문제가 생겨날 수밖에 없다. 이 애널리스트는 "애널리스트 도덕성보다 비대칭성 문제가 '공정게임'에 더 큰 장애요인"이라며 "시장의 건전성을 높이기 위한 대책이었다면 보고서가 모든 투자자에게 공개되도록 하는 시스템을 만드는 쪽에 초점을 맞췄어야 했다"고 꼬집었다. 그런데도 금감원은 한술 더 떴다. 증권사의 애널리스트 평가를 명문화해 애널리스트가 증권사,더 나아가 기관이나 외국인의 입김에 옴짝달싹 못하게 만들었다. 분석보고서가 투자 자료로 활용된다는 점에서 이번 대책은 더욱 걱정스럽다. 금감원은 감사의견이 부적정이거나 의견거절인 기업,관리종목 기업은 아예 보고서를 못내도록 했다. '내리막이 있으면 오르막이 있다'는 증시격언은 기업 실적에도 똑같이 적용된다. 구조조정에 적극 나선 기업이라면 실적이 좋을 리 없다. 누적 부실을 떨어내는 데 따른 손실을 감수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 사정은 달라진다. 구조조정 마무리로 실적이 급속 호전되는 기업이 적지 않다. 정부가 IMF체제 이후 기업 구조조정을 독려한 배경이기도 하다. 그런데도 '전과'가 있다는 이유만으로 분석보고서를 내지 못하게 강제한다는 것은 여간 난센스가 아니다. 금감원은 올해를 '증시 불공정거래 척결 원년'이라고 선포하고 각종 대책을 내놓고 있다. 평가도 긍정적이다. 그렇지만 시장을 무시한 대책은 효과도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박기호 증권부 기자 khpar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