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장독대 .. 현의송 <농협 신용대표이사>

eshyun@nonghyup.com 얼마전 출장길에 들른 한 농가에서 정갈하게 관리되고 있는 장독대를 보았다. 도시생활을 하면서 여인네의 정성이 깃들인 장독대를 본 적이 거의 없던 터라 마치 고향집 마당에 서있기라도 한 것처럼 반갑고 새삼스러웠다. 장독대 항아리 수만 봐도 대번에 그 집의 살림 정도를 알 수 있으니 장독대는 한 가정의 얼굴이기도 했다. 우리 여인네들은 이 장독대를 정결히 하기 위해 많은 정성을 쏟았다. 주부들의 살림솜씨를 평가하는 데에는 장독대를 얼마나 잘 관리하느냐 하는 것도 한 척도가 되었던 것이다. 하기야 한 집안의 고유한 음식 맛이 이 장독대에서 비롯되니 어찌 그 관리에 소홀할 수 있었으랴. '집안이 망하려면 장맛부터 변한다'는 말까지 있고 보면,독을 씻어 물을 붓고 메주를 띄우던 날 금줄까지 치던 정성을 미루어 짐작할만하다. 그렇기 때문에 남의 집 장독을 함부로 열어보는 것은 큰 결례였다. 뿐만 아니라 장독대 옆에 화단을 만들어 꽃을 가꾸었으니 이 또한 장독대를 정결히 관리하는 여인네의 정성을 잘 나타내 주는 것이다. 그런데 가끔은 장독대가 작은 '마당'의 역할을 하기도 한다. 마당에 멍석을 펴 벼를 말리느라 녹두나 콩을 말릴 장소가 없을 때 이것을 소쿠리나 대야에 담아 항아리 위에 올려두면 잘 마른다. 또 멍석을 펴기에는 양이 적은 호박 고구마 가지 등을 얇게 썬 고지는 장독 뚜껑 위에 펴놓으면 더할 나위가 없다. 요즘도 농촌에는 장독대가 그런 대로 보존돼 옛 모습을 잃지 않고 있지만 도시의 가정에서 장독대를 찾아보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기껏해야 옥상이나 베란다에 조그마한 독이 몇 개 놓여있을 뿐 '장독대'라기엔 너무 볼품이 없다. 이것은 우리 고유의 '맛'을 잃어가고 있다는 증거다. 실제로 도시 가정에서 장을 담가먹는 경우는 거의 없다. 메주를 쑤는 일도 이제 추억 속에서나 찾아볼 수 있는 광경이 돼버렸다. 예전같으면 요즘이 한창 장을 담그는 시기다. 내 고향집에서도 어쩌면 장을 담그고 있을지 모르겠다. 올해는 메주를 몇 덩이 가져다 직접 장을 담가볼까나. 불편하고 볼품은 없을지 몰라도 '뚝배기보다는 장맛이 좋다'고 했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