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인 탐구] 이형도 <삼성 중국본사 대표> .. 28일 취임
입력
수정
이형도 삼성전기 부회장(59)이 환갑을 목전에 두고 중국에서 새로운 전기를 맞는다.
28일 열리는 주주총회에서 삼성전기 부회장직을 내놓고 삼성 중국본사 총괄대표를 정식으로 맡게 된다.
최근 삼성전기 수원 본사에서 만난 이 부회장은 중국행(行)에 대해 "새로운 도전이자 인생이 한층 풍부해질 수 있는 기회"라고 말했다.
'게슈타포'라는 별명을 탄생시킨 꼿꼿한 자세는 여전히 빈틈이 없었지만 한층 깊어진 주름에는 낯선 땅에 대한 근심과 8년 반 재직한 삼성전기를 떠나는 아쉬움이 묻어있었다.
"처음엔 새로운 환경에 대한 두려움도 있었지만 지금은 마음이 편하고 기대도 됩니다. 모처럼 기회가 왔으니 그곳 사람들과 친해지고 이곳저곳 다니면서 공부도 할 생각입니다"
그는 지난 설 연휴에 하루 8시간씩을 중국어 공부에 할애했다.
삼성그룹이 이형도 부회장이라는 '히든카드'를 빼든 것은 지금까지 계열사별로 각개전투하던 중국전략이 한 방향 아래 재정비될 것임을 뜻한다.
특히 이번 인사는 이건희 회장이 작년 말 상하이에서 전자 계열 사장단을 모아 전략회의를 갖고 중국은 전략시장이라고 강조한 이후 단행된 것이라는 점에서 무게를 더한다.
이 부회장은 자신의 역할을 '정리정돈'이라고 묘사했다.
"지금까지 삼성은 각 계열사별로 중국 전략을 짰지만 이젠 중국본사가 인력관리와 마케팅을 총괄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앞으로도 기본적인 전략은 각사의 영역"이라고 전제하면서도 "회사마다 잘 하는 것과 못 하는 것이 있기 때문에 시너지 극대화 차원에서 정보 교류가 필요하고 중국 정부의 제한으로 진출하지 못했던 회사들도 앞으로 본격적인 사업을 시작할 수 있게 도와야 한다"며 종합관리의 필요성을 지적했다.
삼성 중국본사에는 현재 김유진 사장을 비롯해 10여명의 인력이 소속돼 있지만 인사권을 갖고 있지는 않다.
따라서 인력관리와 마케팅을 총괄하게 될 것이라는 이 부회장의 설명은 삼성의 중국 전략이 대폭 강화될 것임을 의미한다.
앞으로 1년에 한두 번씩 실무 차원에서 중국 전역에서 대표이사 회의를 연다는 것도 이 부회장이 구상하고 있는 변화다.
그는 중국이 전략시장으로 중요한 이유를 "시장이 그곳에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삼성전기의 경우 손이 많이 가는 조립공정은 거의 중국으로 옮겼고 올해 MLB공장을 추가로 설립합니다. 현재 전체 물량의 40%를 중국에서 생산하고 있는데 2005년이면 50%를 넘어갈 것 같습니다. 30%를 약간 상회하는 판매비중도 3년 후엔 절반 이상이 될 겁니다"
이 부회장의 중국 전략은 역시 전자 계열사가 중심이다.
휴대폰 통신장비 등 이동통신제품, PC 등 IT제품, PDP와 프로젝션TV 등 디지털미디어 제품을 주력 판매 품목으로 삼고 제품 고급화와 차별화를 통해 브랜드로 승부한다는 방침이다.
이 부회장이 제시하는 목표는 지난해 조사에서 40%대로 나타난 브랜드 인지도를 2005년까지 70%로 끌어올린다는 것이다.
브랜드력 강화를 바탕으로 중국에서의 전자부문 매출을 매년 20%씩 신장시켜 2005년에 중국내 톱5 전자 메이커에 진입한다는 목표를 세워 놓고 있다.
본인은 도전과 기회라고 말했지만 중국행 발걸음이 가벼운 것은 결코 아니다.
8년 반 동안 대표이사로 재직한 삼성전기가 지난해 사상 처음으로 마이너스(26%) 성장을 했기 때문이다.
삼성이 지난해 회장단 승용차를 에쿠우스로 바꿀 때도 이 부회장은 회사 형편이 여의치 않다는 이유를 들어 SM5를 고집했다.
인터뷰 중간중간에도 "몸이 아직 삼성전기 책상에 앉아 있다"며 그룹에 대한 질문도 삼성전기에 대한 설명으로 대신했다.
"전기에 8년 반 근무했습니다. 좋은 회사로 한번 키워보겠다고 열심히 일했어요. 지금보다 더 나은 상태를 봐야 한다는 욕심 때문이었죠. 다행히 1월엔 삼성전기의 이익이 크게 늘어나 안심이 됩니다"
이 부회장이 꼽는 삼성의 경쟁력은 일류를 지향하는 기업문화다.
"세계 일류가 되자는 것은 선대 회장 때부터 시작된 삼성의 목표입니다. 직원들에게 비전을 제시한다는 점에서 참 좋은 문화죠"
삼성은 각계열사별로 독자 경영체제를 구축했지만 문화만큼은 장벽 없이 공유되고 있으며 이를 바탕으로 외환위기나 경기침체를 무리없이 넘기고 삼성이 안정된 모습으로 남아 있을 수 있었다고 이 부회장은 말했다.
실무자에게 책임과 권한을 대폭 이양하는 삼성의 관례도 직원들이 밑에서부터 클 수 있는 기회를 줬다고 믿고 있다.
"이병철 전 회장이 스스로 한 번도 도장을 찍은 적이 없다고 말할 만큼 대표이사에게 권한을 일임했고 이건희 회장도 큰 경영 사안만 짚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지난 30여년간 남들보다 일찍 출근해 강도 높게 일해왔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는 것이 습관이 됐기 때문에 머리가 가장 맑은 때도 아침이라고 한다.
매일 조깅하면서도 아무 생각 없이 뛰는 것이 아니라 이런 저런 구상을 한단다.
그가 말하는 구상이란 인류 평화부터 시작해 회사 발전까지 범위가 대단히 넓다.
이 부회장에게 최근 달라진 것이 있다면 퇴근 시간.
출근 시간은 변함없이 7시 전이지만 예전과 달리 6시 전에는 꼭 퇴근한다.
"높은 사람이 앉아서 너무 열심히 일하면 직원들이 부담스러워 한다"는게 이유다.
그는 3월부터 베이징으로 출근한다.
중국은 출근 시간이 이곳보다 늦기 때문에 아침에 한 시간 정도는 더 여유가 생길 것이라고 한다.
"서운하지만…. 그동안 저 없이도 될 만큼 삼성전기는 터전을 잡았어요. 새로 대표이사가 될 강호문 사장이 반도체와 통신에 조예가 깊으니까 새로운 에너지를 가지고 전기를 이끌어 주길 기대합니다"
정지영 기자 cool@hankyung.com
사진=김영우 기자 youngw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