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생활의 발견'] 외로운 서울男 앞에 춘천女.경주女가 나타났다

홍상수 감독의 작품을 대하는 관객은 늘 민망스러움을 체험한다. 영화 '강원도의 힘' '오!수정' 등의 주인공들이 '일상의 위선'을 벗고 '알몸의 본성'을 노출시켰을때 관객들은 마치 자신의 치부를 보는 듯 했다. 홍 감독의 신작 '생활의 발견'에는 남녀의 본성이 전작들에 비해 한층 노골적이고,한층 유머러스하게 표현됐다. 두 여자의 상반된 모습, 그들을 대하는 한 남자의 이중성, 이들 세 사람을 관통하는 닮은 꼴의 본성이 백일하에 드러난다. 영화속 시간과 공간은 지극히 낯익어서 역설적으로 신선하다. 화면에는 일상을 재현하는데 머물지 않고 일상을 실현하려는 감독의 노력이 스며 있다. 카메라는 서울의 연극배우 경수(김상경)가 춘천과 경주에서 벌이는 '로맨스여행'을 추적한다. 춘천여자 명숙(예지원)은 유원지에 온 것처럼 행동한다. 첫 술자리에서 경수에게 호감을 표시하고 곧바로 여관에서 관계를 맺는다. 그녀는 자신의 감정에 충실한 순정파다. 경수는 명숙의 뜻대로 이끌리지만 결정적인 순간에는 거부한다. 그녀가 요구하는 '사랑'이란 말을 뱉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경주여자 선영(추상미)을 만났을 때 경수의 태도는 정반대다. 얌전한 태도의 선영에게 반하고 순진남처럼 '사랑'을 고백한다. 뻔한 속내가 투명하게 비치자 관객들은 이 대목에서 폭소를 터뜨린다. 어쨌든 선영은 그가 이끄는 대로 따라나서고 성관계를 갖는다. 술은 여기서 남녀를 맺어주는 가교역할을 한다. 주인공들은 취기의 힘을 빌려 본심과 본색을 자연스럽게 소통한다. 그러나 그들의 관계는 오래 지속될 수 없다. 명숙의 주변에는 경수의 선배가 배회하고 있고, 선영 곁에는 그녀의 남편이 존재하는 것이다. 선배와 남편은 '사회인' 경수가 눈치를 살펴야 하는 '체면과 위선'의 대상들이다. 결국 주인공들은 위선과 체면의 옷으로 본능을 감추고 일상으로 돌아간다. 인간관계에 허위의식이 만연한 것은 서로를 닮으려는 본성 때문이다. 주인공들의 행위와 심적 경로는 서로를 주도면밀하게 복제한다. 경수는 선배감독으로부터 들었던 "우리 괴물이 되진 말자"는 말을 춘천의 다른 선배와 명숙에게 들려준다. 춘천역과 경주역에서 배웅나온 여자들에게 경수는 "출발까지 15분 남았어"를 반복한다. 두 여자는 유원지(춘천)와 유적지(경주)에 온 듯이 달리 행동하지만 사실 본심은 같았다. 섹스후 그들은 '당신속의 나'란 글귀를 똑같이 남긴다. 또 경주여자 선영을 대하는 경수의 태도는 춘천여자 명숙이 자신에게 했던 행동을 그대로 모방한 것이다. 홍 감독은 "사람들 보고 자기 하고 싶은대로 하라고 하면 결국 서로를 흉내내고 있는 것을 보게 될 것"이란 에릭 호퍼의 말을 상기시킨다. 허위의식도 전염되는 것이다. 화면속 일상은 생동감이 넘친다. 배우들이 상황을 먼저 익힌뒤 대사를 만들어 촬영하는 독특한 방식으로 촬영됐다. 경수역의 김상경은 첫 영화 나들이에서 기만으로 무장한 우리의 일상을 거침없이 표현했다. 유재혁 기자 yooj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