겉으론 "계약위반" 속내는 "경영권불안?"..진로, 골드만삭스 제소배경
입력
수정
(주)진로가 골드만삭스를 상대로 서울지방법원에 "채권매수금지 가처분신청"을 낸 배경은 뭘까.
진로가 화의상태에 있는 기업인데다 상대가 세계적 증권회사인 골드만삭스라는 점에서 여러가지 궁금증을 자아낸다.
더군다나 골드만삭스는 진로의 경영자문을 해주던 회사다.
"진로가 6일 골드만삭스를 제소했다"는 한국경제신문의 보도(7일자 1면)로 증권시장도 민감하게 반응했다.
(주)진로는 물론 계열사인 진로산업,계열분리된 진로발효까지 주가가 상한가로 치솟았다.
애널리스트들도 진로가 소장에서 "경영권"을 언급하고 주가가 급등했다는 점에서 이 회사의 앞날에 크게 영향을 미칠 수있는 "뭔가가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진로가 소송배경에 대해 묵묵부답으로 일관하고 있는 점도 이상하다.
진로는 전날과 마찬가지로 이날도 "법원에 낸 신청서에 적힌 내용 외에는 달리 할 말이 없다"며 공식반응을 극도로 자제하고 있다.
비공식루트와 금융가에서 흘러나오는 얘기를 종합해 보면 골드만삭스가 화의상태인 진로의 앞날에 영향을 미칠 정도로 채권을 이미 많이 확보했거나 하지 않을까 우려해 가처분신청을 낸 것으로 보인다.
골드만삭스는 지난 98년 자산관리공사의 부실채권 매각 때 (주)진로 채권 1천7백억여원어치를 매입했다.
당시 골드만삭스가 다른 경쟁업체들보다 훨씬 높은 가격을 써내 주목을 받았었다고 금융계 관계자는 전했다.
골드만삭스는 또 진로가 홍콩법인에서 발행했던 변동금리부채권(FRN)도 상당규모로 사들였다는 소문도 있다.
따라서 진로는 골드만삭스가 채권을 추가로 매입,여부등을 결정할 때 결정적인 영향력을 행사하지않을까 우려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진로가 법원에 낸 소장에서 "파산신청등 적대적 행위를 못하게 해달라" "경영권을 획득하려는 속셈" 등의 경영권과 관련있는 문구를 넣은 것도 이 때문이라는 분석이 가능하다.
화의와 법정관리 신청에 정통한 법률사무소와 변호사들에 따르면 진로가 경영권을 운운했다면 "채권자 75% 확보"와 관련이 깊을 것으로 보고 있다.
한 변호사는 "진로는 화의중인 기업이기 때문에 화의의 지속이나 화의졸업을 위해서는 항상 전체 채권자의 75% 동의를 확보해야 한다"며 "최근 골드만삭스가 75% 동의를 위협할 정도로 화의채권 등을 확보해 케스팅보트를 쥐었을 가능성이 있다"고 풀이했다.
진로 채권 2조7천억원중 어느 정도를 골드만삭스가 확보했는 지가 관건인 셈이다.
진로는 골드만삭스가 진로홍콩법인의 채권까지 사들인 뒤 파산신청을 한 점을 깊이 우려하고 있다.
당시 골드만삭스는 진로홍콩법인의 주채권자가 된 이후 진로를 문제기업으로 만들고 있다는 것같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화의과정에서 지분을 앞세워 압력을 가하거나 실제로 경영권에 지대한 영향을 행사하지 않을까 걱정된다는 반응이다.
물론 골드만삭스가 단순히 계약을 어겼기 때문에 소송을 냈다는 얘기도 있다.
진로는 지난 97년 자금난에 빠지면서 외자유치 등을 위해 골드만삭스와 경영자문계약을 맺었기 때문에 골드만삭스는 그 이후 진로채권 등에 투자해서는 안된다는 게 진로주장이다.
골드만삭스가 이를 어기고 발행 채권과 주식을 사들이는 것은 계약위반이라는 것. 골드만삭스 한국지점은 이에 대해 "정확한 정보가 없어 공식적으로 대응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진로는 지난 97년 채권단과 부도방지협약을 체결하고 98년초 법원의 허가를 받아 현재 화의절차를 밟고 있다.
고기완.오상헌 기자 dada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