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상춘의 국제금융읽기] '조세피난처와 국제 돈세탁'

최근 들어 조세피난처를 통한 국제 돈세탁에 대한 우려가 증폭되고 있다. 테러집단의 자금에 이어 개도국들의 리베이트 자금 유입이 돈세탁을 목적으로 증가하고 있고 아르헨티나 사태로 이탈된 자금이 속속 유입되면서 또 다른 금융위기의 싹이 웃자랄 조짐을 보이고 있다. 특히 미국기업들이 자구내 세금회피를 목적으로 조세피난처를 적극 활용하고 있는 양상이다. 지난해 이후 국제 돈세탁은 조세피난처에 세워진 유령회사(Paper Company)를 통해 이뤄지고 있다. '검은 돈'으로 불리는 자금들이 이 회사를 통하면 합법적인 자금으로 변신한다. 조세피난처에서는 간단한 절차만 거치면 회사설립도 자유롭다. 대개 검은 돈은 마피아 자금이나 마약거래 대금,도피성 자금이 주류를 이룬다. 개도국들의 각종 관급공사와 관련된 리베이트 자금도 많은 부분을 차지한다. 최근에는 다국적 기업이나 부유층들의 조세회피용 자금들도 부쩍 늘어나고 있는 추세다. 반면 검은 돈을 이용하는 사람은 역시 이 자금을 공급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그만큼 자전(自轉)거래가 많다는 의미다. 더욱 눈길을 끄는 것은 아시아 외환위기 이후 대외신용을 잃은 개도국 기업들이 이 자금의 애용자로 급부상하고 있다는 점이다. 국제적으로 검은 돈이 거래가 되려면 철저한 비밀보장이 생명이다. 한마디로 자금의 출처나 사용처에 대해서는 '묻지마' 거래인 것이다. 물론 아킬레스건인 비밀보장에 손상이 가면 해당 금융기관들은 곧바로 시장에서 퇴출당한다. 물론 경제적으로 국제 돈세탁이 반드시 나쁜 것만은 아니다. 검은 돈이 세탁되면 국제유동성을 보완하면서 세계경제와 각국 경제성장에 기여하는 효과가 있다. 현 수준에서 지하경제 규모 가운데 5% 정도가 양성화되면 세계경제 성장률은 0.6∼0.8%포인트 상승된다는 분석도 있다. 문제는 부정적 효과가 훨씬 크다는 점이다. 무엇보다 금융체계의 효율성과 건전한 금융감독 기능을 약화시킨다. 금융시장의 생명인 투명성을 떨어뜨리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검은 돈이 거래되려면 철저한 비밀보장이 전제돼야 하기 때문이다. 특히 국제 돈세탁은 형평성 차원에서 심각한 문제를 발생시킨다. 가뜩이나 도덕적 해이현상이 많은 금융거래에서 국제 돈세탁이 늘어나면 세계 빈부격차와 도덕적 상실감,경제주체들의 근로의욕 저하 등 부작용이 발생된다. 그동안 국제금융시스템을 안정시키기 위해 세계 각국들이 조세피난처에 대한 다양한 규제방안을 모색해 왔으나 제대로 효과를 보지 못하고 있다. 특히 국제통화기금(IMF),경제협력개발기구(OECD)와 같은 국제기구들이 주도한 규제방안일수록 실효를 거두지 못하고 있는 점은 앞으로 이 지역에 대한 정책을 모색할 때 많은 시사점을 던져주는 대목이다. 최근 들어 국지적인 금융안정망이 강조되는 것도 이런 측면에서 보면 쉽게 이해가 된다. 국제기구가 제역할을 하고 국제금융시장이 안정되기 위해서는 조세피난처를 국제금융감시망에 편입시켜야 하고 이 지역에 대한 과세를 강화해야 효과를 거둘 수 있다는 의미다. 문제는 섣불리 규제하다간 이 지역에서 거래되는 자금의 성격상 통화가 퇴장되면서 국제신용 경색현상과 세계경제에 악영향을 불러올 가능성도 있다. 결국 지구촌 사회가 도래할수록 국제금융시장이 안정되려면 세계 각국의 협조가 그만큼 중요하다는 점을 시사해 주는 대표적인 예가 조세피난처에 대한 정책이다. 전문위원 sch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