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들리는 협상전선] (13) 뒷북 친 어업협상 <1>

"주말이라서 러시아와 일본에 전화를 해도 확인이 안되네요. 러시아와 일본 어업 관계자가 최근 만났다는 소식을 듣긴 했는데 이런 합의가 있었다는 얘긴 금시초문인데... 난감합니다" 지난해 10월6일 오후. 일본과 러시아가 남쿠릴열도 주변 수역에서 한국을 포함한 제3국의 조업을 금지시키기로 합의했다는 일본 언론의 보도내용을 확인할 방법이 없다며 해양수산부 관계자는 이렇게 푸념했다. 하지만 주말이 지나고 다음주 월요일이 돼도 정부로부터 명쾌한 답변을 들을 수는 없었다. 유삼남 해양수산부 장관은 취임한지 얼마 되지 않아 업무 파악도 제대로 안된 상태였고 홍승용 당시 차관도 중남미 출장으로 자리를 비운 상황. 해양수산부는 러.일 합의설이 기정사실로 굳어져가던 11월 말까지 "러.일 두 나라가 완전히 합의하지는 않은 상태"라는 애매한 태도로만 일관했다. 외교통상부 관계자도 "한.러간 협력은 여러 분야에서 잘 이뤄지고 있으며 특히 어업협력은 호혜적"이라는 엉뚱한 설명만 늘어놨을 뿐이었다. 일본이 남쿠릴 수역에서의 조업 금지를 요구한데 대해서도 "일본측의 의도적 도발에 일일이 대응하기보다 인내를 갖고 대처할 필요가 있다"던 한국정부의 협상 전선은 러시아 정부의 태도 변화로 순식간에 무너지기 시작했다. 대응이 허술했으니 협상은 두말할 나위가 없었다. 일본이 오랜 시간 동안 러시아 당국자들과 '물밑' 접촉을 해온 사실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한국정부이기도 했다. 일본 언론의 보도가 나온 후에야 해양수산부 및 외교통상부 관계자들이 부랴부랴 러시아와 접촉을 재개했으나 버스는 이미 떠난 뒤였다. 한국 정부는 10월 한 달 동안 러시아 어업관계자들을 3차례 만난 것을 비롯 모두 5차례의 공식협상을 가졌다. 그 전까지 이들이 러시아 담당자들을 만나 협상을 가졌던 것은 단 한 번이었다. 시기도 늦었고 다급도 했던 만큼 협상이 진전을 볼리 만무했다. 지난해 11월22∼27일 서울에서 열렸던 한.러 어업위원회에 참여했던 한 원양업체 관계자는 "꽁치 문제를 다루기 위해 러시아 수산당국자를 불렀지만 본론에 들어가지도 못하고 주변만 맴돌았다"며 당시 회의 분위기를 회고했다. "성난 여론에 떠밀려 협상 자리에 오긴 했지만 러시아와 일본 사이를 비집고 들어갈 만한 여지도 없었고 이런 상황을 공개하지도 못하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형국이었다" 한국 정부가 내세운 카드도 없었다. 일본의 영유권 주장과 어업권은 별개 사안이므로 한국이 남쿠릴 수역에서 조업을 못할 이유가 없다는 단순논리가 전부였다. 외교부 관계자도 "일본이 산리쿠 수역 조업 금지를 조건으로 내걸고 러시아 대사관에 줄기차게 들락거리는 모습을 보고 이미 어느 정도 예견했었지만 한국이 러시아에 제시할 카드가 없었다. 게임의 승패는 결정나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고 자인했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서창배 연구위원은 "일본은 불법어로 단속과 자원보호에 협력한다는 명목으로 한국 북한 우크라이나 대만 등이 어업 쿼터로 제시하는 3백50만달러 정도의 자금지원을 제안하는 등 당근을 제시하며 끈질기게 러시아를 유혹했다"며 "일본의 '영토 명분'과 러시아의 '경제 실리'가 정확히 맞아떨어진데 비해 한국의 전략은 어느 곳에도 들어맞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임상택 기자 lims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