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자통신연구원 (ETRI)] 다시 뛰는 'IT 코리아 심장'

지난 11일 밤 11시30분께 대전시 유성구에 있는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원장 오길록) 제1연구동 281호는 환하게 밝혀져 있었다. 시간이 자정을 향하고 있건만 이 연구실에는 인증기반연구팀 팀원 7명이 남아 있었다. 진승헌 팀장과 조영섭 선임연구원 등 팀원들은 이날도 여느 날과 다름없이 연구실에서 하루를 마무리하고 있었다. 인증기반팀만이 아니었다. 불이 켜진 방이 꺼진 방보다 훨씬 많았다. ETRI의 8개 연구동은 자정이 넘어서도 초저녁이라고 착각할 정도로 불야성을 이루고 있었다. 정보강국 'IT(정보기술) 코리아'의 미래를 밝히는 'IT산업의 등대', 바로 그것이었다. 최대 규모, 최대 연구성과 =지난 1976년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부설 한국전자통신연구소로 출발한 ETRI는 국내 최대의 정보통신 국책 연구기관이다. 한 해 예산이 3천억원이 넘고 연구인력만도 2천명에 달한다. 특히 연구인력 가운데 석.박사 학위 소지자가 총 1천7백72명으로 전체의 90%나 된다. 그야말로 'IT 엘리트 집단'이다. 외형뿐 아니라 내실 또한 알차다. 현재까지 1만1천여건의 국내외 특허와 2만4천여건의 국내외 논문을 산출했다. 이는 연구기관 20여개가 몰려 있는 대덕밸리의 전체 지식재산권에서 60%를 차지하는 수준이다. 게다가 1천7백76개 기업에 8백11건의 기술을 이전해 지금까지 2천7백60억원에 이르는 기술료 수익을 거뒀다. 한때 겪은 위기 =명실공히 국내 최대 연구인력과 규모를 자랑하는 ETRI도 한때 위기를 겪었다. 1997년 말 외환위기가 터지자 ETRI 역시 구조조정의 거센 바람을 피할 수 없었다. 곧이어 위기 극복을 위한 대안으로 여겨졌던 '벤처 열풍'까지 밀어닥쳤다. 그 결과 불과 3년여만에 2천여명의 연구인력 가운데 절반이 ETRI를 떠났다. 물론 외환위기와 벤처열풍 때문만은 아니다. 신분이 제대로 보장되지 않는 것도 문제였다. 원천기술보다는 응용기술 개발에 주력하는 연구원 특성상 프로젝트 기간이 6개월 내지 1년에 불과했다. 이에 따라 연구원들은 프로젝트가 끝나면 팀이 해체되고 구조조정 대상에 포함되진 않을까, 원하지 않는 분야를 맡게 되진 않을까 늘 불안하게 생각했다. 그러나 올들어 눈에 띄게 달라졌다. 자발적으로 ETRI를 떠나는 연구원이 거의 사라졌다. 민간연구소에서 수행하기 어려운 장기 대형 프로젝트가 맡겨지고 정부가 과감하게 예산을 지원하자 연구원들의 사기가 올라가기 시작했다. 게다가 'U턴' 제도를 도입한 뒤 15명의 우수인력이 돌아왔다. 이제 연구원들은 잡념을 버리고 연구에 몰두할 수 있게 됐다. 다시 뛰는 'IT산업의 심장' =ETRI의 역사는 한국 IT산업의 역사와 궤를 같이한다. 우리나라 IT산업 발전의 촉매가 됐던 전전자식 교환기(TDX)나 CDMA(부호분할다중접속) 방식 이동전화시스템 등 7개 핵심기술 개발은 과거와 미래를 통틀어 세계적 연구결과로 기록될 ETRI의 자랑거리다. 지난해 4월엔 미국 퀄컴사로부터 CDMA 로열티 1억달러를 받아내기도 했다. 자체 집계에 의하면 ETRI가 개발한 기술은 연구개발 투자비 대비 2백20배를 상회하는 1백68조원의 신산업 시장 유발효과를 창출했다. ETRI는 올해 4세대 이동통신 차세대 인터넷 서버 초고속 광가입자망 지능형 통합정보방송(SmarTV) 차세대 능동형 네트워크 정보보호시스템 등 정보통신부 5대 국책과제를 본격 추진하고 있다. 이진식 홍보실장은 "이제 ETRI는 IT코리아를 이끌고 우리 기업들이 기술력을 앞세워 세계 시장을 개척할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대전=정대인 기자 bigm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