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도 칵테일처럼 .. 호텔신라 레인보우 바텐더 '유유정씨'

호텔신라가 운영하는 "레인보우"에서 8년째 바텐더 생활을 하고 있는 유유정(28)씨. 수백가지의 칵테일을 자유자재로 만드는 유씨는 칵테일계의 "소믈리에(고급 레스토랑에서 와인을 감별하고 관리하는 전문가)"를 꿈꾸는 미혼 여성이다. 2백여명에 달하는 단골 고객들의 취향도 속속들이 파악하고 있어 맛과 빛깔을 원하는대로 빚어줄 수 있다. 만취상태로 들어와 주정을 하는 손님이나 엉뚱하게 "데이트"를 신청하는 이들도 있지만 이제는 제법 여유있게 받아넘길 정도로 이력도 붙었다. "소믈리에가 와인 서빙의 질을 한차원 높이듯이 바텐더도 칵테일의 매력과 술자리의 품격을 배가시킬 수 있을거라고 생각합니다" 가장 자신있는 칵테일은 피나콜라다와 레인보우.파인쥬스 럼 코코넛시럽을 쉐이킹한 피나콜라다는 특유의 달싹하고 상큼한 맛으로 여성 고객들의 입맛을 사로잡는다고 한다. 무알콜 시럽에서 72도짜리 럼주까지 7가지를 섞어 만드는 레인보우는 한모금씩 넘길 때마다 맛과 향이 달라 인기가 높다. "직장 동료나 친구들끼리 레인보우를 앞에 놓고 "원샷"을 외치는 장면은 정말 보기 좋아요" 물론 유씨의 바텐더 여정이 순탄치만은 않았다. 96년 2월 인하공전 관광과를 졸업하면서 호텔신라에 입사한 그녀는 엄청나게 많은 칵테일 종류와 술의 특성을 익히느라 언제나 만취상태였다. 위스키 브랜디 와인 맥주 진 보드카 럼 등의 제조방법과 유래도 별도로 외우고 공부해야 했다. 특히 레인보우에는 비중있는 정.재계 인사들이 자주 드나들기 때문에 서빙에도 각별한 신경을 쓸 수밖에 없다. 한번은 나이가 지긋한 모기업 회장이 혼자 와서 네그로니를 주문하면서 대뜸 "당신,자격증은 있나?"라고 물었다고 한다. 유씨는 속으로 자존심이 상했지만 내색하지 않고 진 캄파리 버무스를 섞어 한잔에 담았다. 맛을 본 노회장은 "맛이 제법 괜찮은데...여자라서 미덥지 않아 시험을 해봤다"면서 "정말 마시고 싶은 칵테일은 레인보우"라고 말했다고 한다. "손님들과의 신뢰가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는 순간이었어요" 1999년 여름에는 우리나라를 방문한 필리핀의 조지프 에스트라다 대통령 일행이 갑자기 바를 찾은 일이 있었다. 대통령 일행은 와인과 위스키를 마시는 틈틈이 여러 종류의 칵테일을 주문했는데 서빙에 나선 유씨는 등에서 식은 땀이 흘렀다고 한다. "평소에 영어를 익혀두지 않았더라면 큰 낭패를 볼 뻔 했어요" 그녀는 자신의 서비스가 한국의 이미지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사실에 뿌듯한 자부심을 느꼈다. 반면 그녀를 괴롭히는 것들도 많다. 새벽 2시30분에 퇴근할 때 택시기사가 마치 "술집 여종업원"을 대하는 듯한 시선을 받을 때도 그렇고 개인적으로 궂은 일이 있어도 항상 웃으면서 응대해야 하는 일도 그렇다. 에어로빅이나 수상스키를 통해 스트레스를 풀고 있지만 친구들과 근무 스케줄이 달라 좀처럼 시간을 맞추기 어려운 것도 바텐더의 애로다. "모든 일이 그렇겠지만 처음에 가졌던 마음을 간직하는 것이 중요한 것 같아요. 열심히,열정적으로 살겠다는 각오가 시들지 않도록 더욱 공부할 생각입니다" 글=조일훈 기자ji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