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화 피는 마을] 봄바람 난 계곡마다 수줍은 꽃물결 출렁

화신(花信)이 일찍 도착했다. 지난해보다 일주일 정도 빠르다는 소식이다. 동백바람 살랑이던 남녘땅엔 하얀 매화가 활짝 폈다. 이번 주말에서 다음주까지가 절정. 코쿤(cocoon)족이란 불명예(?)를 걷어내고, 길위에 올라볼 일이다. 서두르지 않으면 놓치기 쉽다. 꽃시계는 늘 어김없지만 오늘이 다르고, 내일은 자취마저 찾아볼수 없을 정도로 무상(無常)하다. 이맘때면 매화천지에 사람천지로 들썩이는 곳. 해남의 보해매원과 광양의 청매실농원으로 향한다. 해남 보해매원 =서해안고속도로 끝 목포나들목에서 나와 영암방조제를 건너면 해남땅. 붉은 황토밭에서 월동배추를 수확하는 모습이 슬로비디오처럼 차창에 스친다. 영암방조제에서 15km. 이정표를 따라 오른편으로 꺽어 들어가면 보해매원이다. 울타리 삼아 심어 놓은 큰 키의 동백나무 너머는 온통 매화밭. 보해양조가 1979년부터 조성했다. 93년부터 매화개화시기에 맞춰 관광객에게 개방하고 있다. 14만평 1만4천여 그루에 촘촘히 매화가 화사하다. 한송이 한송이 단아한 자태를 뽐낸다. 한데 어울린 모습은 그야말로 매화경(梅花境). 가만히 보니 매화만이 아니다. 부산한 날개짓의 꿀벌이 반이다. 자연수정을 위해 한통에 3만마리가 산다는 양봉통 4백50개를 빌려 풀어놓았단다. 벌에 쏘일까 염려하지 않아도 된다. 벌들이 매화향에 빠져 사람들에게는 관심을 두지 않는 것 같다. 어린아이들도 벌을 아랑곳 않고 여기저기 뛰어다니며 포즈를 취하기에 바쁘다. 이곳에서 얻는 매실은 한해 최대 7백t. 매실주 등의 가공용으로 실려 나간다. TV드라마 허준이 방영된 뒤 kg당 1천3백원선이었던 매실가격이 최고 9천원선까지 뛰기도 했다고 한다. 매실 한알 한알이 기업을 돌아가게 하는 돈인 셈이다. 요즘은 잘생긴 꽃을 골라 따가는 사람이 있어 골치라고 한다. 농원관리를 맡고 있는 김창기 차장은 "꽃을 따 건조시킨 뒤 차에 띄워 먹는 멋을 즐기는 이들이 많다"며 "꽃한송이는 곧 열매 한알에 해당하는 만큼 꽃을 따가는 일은 삼가해 달라"고 주문. 서해안고속도로~목포나들목~목포공항방향 1번국도~2번국도~나불1삼거리 우회전~영산강하구둑 지나 좌회전~49번지방도(대불산업공단)~영암방조제 지나 좌회전~806번지방도~예정리 보해매원. (061)532-4959, www.bohae.co.kr 광양 청매실농원 =섬진강을 사이에 두고 하동땅을 바라보며 달리는 광양의 861번지방도. 백운산자락 수놓은 매화가 잔잔한 섬진강 물빛과 어울려 길위의 흥을 돋운다. 매실박사 홍쌍리씨의 청매실농원이 그중 으뜸이다. 농원은 홍씨의 시아버지인 김오천옹이 일본에서 광부생활을 하다 1931년 귀국, 밤나무와 매화나무를 심으면서부터 시작됐다. 매실의 효용을 눈으로 확인한 홍씨는 갖은 연구끝에 나무종자를 개량하고, 매실을 이용한 식품도 만들면서 널리 알려졌다. 이곳의 장점은 백운산자락 트래킹을 겸할 수 있다는 것. 중턱에서 섬진강쪽을 향해 내려보는 풍광이 손꼽힌다. 파릇이 돋아나는 풀밭위로 아무렇게 펼쳐 놓은 듯한 매화무리가 이른 봄의 색을 대표한다. 오른편으로 따라 오르는 산책길이 특히 좋다. 그러나 사무실 뒷편 비탈은 잡목을 베어내고, 새로 매화나무를 심어 다소 허전하다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그래서 뭔가 달라졌다고 말하는 이들도 있다. 가지런히 놓인 2천여개의 재래장독은 이곳의 정감 넘치는 풍광에 한몫하는 주인공. 그속에 된장, 장아찌 등 매실을 이용한 전통식품이 익고 있다. 홍씨가 건네준 통매실을 물으니 입안 전체가 깔끔해지는 것 같다. 아삭아삭 씹히는 맛이 달콤하면서도 싸하다. 2년7개월을 묵힌 매실이란게 믿기지 않는다. 비결은 어디에 있을까. 홍씨가 '떼끼' 하며 정색을 한다. "얼마나 연구 노력해 얻은 결과인데..." 경부고속도로~호남고속도로~전주나들목~17번 국도~남원~19번 국도~구례~간전교~865번 지방도~861번 지방도~다압면 섬진마을. 청매실농원 (061)772-4066, www.masil.co.kr 광양=김재일 기자 kji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