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여록] 분식회계 '억울.정당' 공방

14일 열린 증권선물위원회에선 2000년도 감사보고서 분식회계 혐의가 있는 13개 업체와 담당 회계법인에 대한 무더기 징계여부를 놓고 열띤 논쟁이 벌어졌다. '한국판 엔론'으로 비유된 이번 사태는 금융당국과 해당업체는 물론 시장에서도 민감한 반응을 보였다. 증선위의 논란은 그 이전부터 상당한 진통이 있었다. 증선위 하루 전인 지난 13일 열린 감리위원회는 오후 5시에 시작,6시간이나 끌었었다. 이 회의에서도 과반수를 간신히 확보해 증선위에 올렸다는 후문도 들렸다. 통과위원회처럼 움직였던 그동안의 모습과는 크게 달랐다. 증선위도 결정때까지 난항을 겪긴 마찬가지였다. 발표시점은 오후 1시30분에서 오후4시로 늦춰졌다. 쟁점사안에 대한 이견으로 오전 10시30분에 시작된 회의가 오후 2시에 속개되는 등 지연됐기 때문이다. 증선위의 이같은 진통은 '억울함'과 '정당함'의 공방에서 빚어졌다. 당국의 지적은 "기업체와 회계법인이 지분법 기준을 보수적으로 적용하지 않아 이익규모를 부풀렸다"는 것으로 요약된다. 기업과 회계법인은 "기준 자체가 명확치 않아 잘못된 회계는 아니다"라고 맞섰다. 이 공방은 감리위와 증선위에서도 그대로 재연된 것이다. 당국이 보수적인 회계에 집착하는 데엔 그만한 이유가 있다. 감사의견이 달린 재무제표는 기업의 투명성을 가늠하는 중요 자료다. 미국에선 엔론 사태가 터지고 대통령은 분식회계 근절을 지시했다. 회계 투명성을 유지해야 한다는 부담이 적지않은 상황이다. 그렇더라도 기업 입장에선 '억울함'이 없어야 불신도 없다. 해당기업과 회계법인이 소송 불사까지 외친 데는 나름대로 이유가 있다. 명확한 잣대없이 분식회계로 매도당할 수는 없다는 게 이들의 입장이다. '억울함'과 '정당함'의 공방은 이날 오전 증시에 충격을 줬다. 한국증시 초유의 트리플위칭데이였던 데다 증선위 회의가 당초 일정보다 앞당겨진 오전에 열리면서 징계 사실이 시장에 알려졌기 때문이다. 한 애널리스트는 "기업과 당국의 공방으로 휘청거리는 증시는 코리아 디스카운트 요인의 하나"라고 꼬집었다. 박기호 증권부 기자 khpar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