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코너] 日 금권정치의 '변곡점'
입력
수정
"본인의 정치활동과 언동으로 당에 폐를 끼쳐 죄송하게 생각합니다.
첫 국회의원 선서 때를 생각하면서 초심으로 돌아가겠습니다"
지난 15일 자민당사 8층 기자회견실.탈당발표문을 읽어 내려가던 스즈키 무네오 의원의 눈자위가 벌개졌다.
목이 메인 듯 잠시 말을 멈춘 그가 손수건을 꺼내 눈물을 훔쳤다.
질문이 쏟아졌다.
-무엇을 반성한단 말인가.
"지적받은 모든 것을 뉘우친다는 뜻이다"
-위법 사실은 어떤 것이 있는가.
"나쁜 짓을 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자민당의 막후 실세로 외무성을 떡 주무르듯 했던 스즈키 무네오 의원이 마침내 당과 이별했다.
이권 개입,인사 청탁 등 자신을 둘러싼 스캔들이,다나카 마키코 전 외상 경질을 계기로 해 수면 위로 떠오른지 근 2개월만의 일이다.
모양새를 '탈당'으로 포장했을 뿐,야당과 여론의 공세를 피하기 위한 도피였다.
회견 후 그는 지역구인 홋카이도 북단의 쿠시로로 몸을 감춰 버렸다.
스즈키 의원 사건은 일본 정치사에 하나의 분수령이 됐다. 청탁 압력 등 자민당이 집권여당으로 누려온 '상식'이 더 이상 통하지 않는 세상이 됐다는 것이다. 하시모토 파벌의 금고지기 스즈키 의원은 관급공사 등 각종 이권에 개입하며 정치자금을 조성해 계파 살림을 떠받쳐온 인물로 알려져 있다.
다나카에서 다케시타를 거쳐 하시모토파로 이어져 내려온 자민당 본류의 교과서적 금권정치를 본받은 우등생이었다.
자민당은 개인비서의 탈세,이권개입으로 궁지에 몰린 가토 고이치 의원이 18일 탈당의사를 밝힐 것으로 보여 또 한명의 거물 정객과 이별을 앞두고 있다.
총리후보 영(0)순위로 꼽혀온 가토 의원이지만,돈 의혹이 불거지자 민심이 그를 온전히 놓아두지 않았기 때문이다.
한국에서는 최근 돈 선거를 고백했던 민주당 고위 정치인이 왕따를 당했다는 소식이다.
그러나 세상은 바뀌었다.
금권정치가 당연시됐던 일본에서 낡은 틀을 깨고 깨끗하고 투명한 옷으로 갈아입자는 여론이 대세를 이루고 있다.
스즈키,가토 의원의 시련은 한국의 정치인들에게도 '바다 건너 불'이 아니다.
도쿄=양승득 특파원 yangs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