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국적 R&D 주식회사 'APT센터'] "세계최고 전력기술 값싸게"

'다국적 R&D 주식회사의 탄생' 국제 컨소시엄 형태의 연구개발(R&D)센터가 미국에서 뜨고 있다. 주인공은 워싱턴대학에 위치한 APT(Advanced Power Technology)센터. 국내 LG산전을 포함해 미국 일본 이탈리아의 전력기기 업체가 공동으로 연구과제를 발주하고 결과물을 공유하는 곳이다. 기업간 기술경쟁 수위가 높아지면서 지식재산권에 대한 중요성이 여느 때보다 강조되고 있지만 독자적으로 기술개발을 하다가 한계에 봉착했거나 R&D 비용을 감당할 수 없다면 해외 경쟁사와의 제휴도 고려해볼 만하다. 전력기기 및 공장자동화시스템회사 LG산전이 99년 겪었던 문제도 비슷했다. LG산전은 미래사업 육성의 일환으로 10년 전부터 전력 정보기술(IT) 시스템을 연구해 왔다. 전력 IT시스템이란 발전 배전 송전 기능을 전산으로 자동 관리하는 것. 요즘 국내에서 한창 화두가 되고 있는 전력산업의 민영화와 그에 수반되는 전산화 추세를 감지해 사업기회를 포착한 것이다. 이 회사는 시스템 개발 과정에서 발전기에 일어날 수 있는 각종 문제들을 시뮬레이션해 보기로 결정했지만 발전기 하나가 2백70계통이나 되는 복잡한 구조로 돼 있는 것이 걸림돌로 떠올랐다. 한번 시뮬레이션 작업을 할 때마다 한달 이상의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소프트웨어를 압축하듯이 전력계통을 축약하는 기술이 필요했다. APT센터의 R&D 시스템 =이때 LG산전이 문을 두드린 곳이 미국 워싱턴대학에 있는 국제 APT센터였다. APT센터는 미국의 과학재단.전력연구소.국방부가 97년 5백만달러를 투자해 워싱턴대학 전기공학과에 설립한 전력 기술 연구소다. 이 센터는 한마디로 다국적 주주들이 투자한 R&D 주식회사 형태로 운영된다. 각국 전력기기 및 시스템 회사들이 매년 5만달러의 회원비를 내고 공동으로 연구 프로젝트를 발주한다. 연구진은 워싱턴대학 외에 미국 애리조나 주립대학과 버지니아 공과대학의 교수 25명과 박사과정 학생들로 구성돼 있다. 연구 과제를 제안한 회원 기업은 한두명의 소속 엔지니어를 파견해 기술개발에 직접 참여한다. 회원의 기준은 자체 기술력과 인지도를 갖고 있는 전력기기 및 시스템 업체다. 1국 1개사가 원칙이다. 기존 회원이 만장일치로 찬성해야 회원으로 가입할 수 있다. 현재 APT센터 회원으로 등록된 회사는 미국 알스톰에스카, 일본 미쓰비시전기, 이탈리아 체시(Cesi). LG산전까지 합쳐 4개 회사이며 대만 전력청이 추가로 회원 가입을 추진하고 있다. 회원비가 연간 5만달러에 불과한 이유는 펀드를 조성해 자금 지원을 하는 미국 정부를 등에 업고 있다는 측면도 작용했지만 연구 결과물에 대한 지식소유권을 미국 정부 및 학계와 회원사들이 공유하도록 돼 있기 때문이다. 회원 기업은 기술담당 임원급을, 대학은 시니어 교수를 한 명씩 보내 이사회를 구성하고 매년 두번씩 만나 그 해에 해결할 연구과제를 골라내고 예산심의를 하는 것은 주식회사와 비슷한 형태다. 상품화는 기업의 몫 =99년 이 센터의 회원으로 가입한 LG산전은 첫 프로젝트로 난관에 봉착했던 전력계통 축약기술 개발을 의뢰했고 APT센터는 2년 만에 이 기술을 성공적으로 개발해냈다. 성공 비결은 전력계통 축약이라는 개념을 발명해낸 이 분야 권위자 중국계 미국인 차오 버지니아 공과대학 교수가 직접 뛰어들었기 때문이다. 다만 APT센터의 역할은 연구과제 수행에 그친다. 상품화는 어디까지나 회원사의 몫이다. 연구 결과물을 공유하는 대신 상품화할 수 있는 우선권은 최초 기술개발을 의뢰한 회사에 귀속된다. 의뢰 기업은 로열티 없이 상품화할 수 있지만 기타 회원은 제품당 0.2~1%의 로열티를 APT센터에 지불해야 한다. 2년간 APT센터를 오가며 전력계통 축약기술 개발에 참여했던 LG산전 신사업기획팀 이진호 박사는 "저렴한 가격으로 세계 최고의 기술진을 활용할 수 있는 것이 APT센터의 최고 장점"이라고 말했다. 그는 "국내 대학에서도 기업의 프로젝트를 수주하는 경우가 있지만 APT센터는 세계적인 규모인데다 전력 분야에서 독보적인 기술력을 갖춘 R&D 국제 컨소시엄"이라고 설명했다. 현재 APT센터에서 진행중인 프로젝트는 알스톰에스카의 전력시장 입찰 결정 기술 등 총 7개다. 알스톰에스카는 APT센터처럼 국적이 미국인데다 초기 멤버로 독보적인 기술우위를 가지고 있어 APT센터에 미치는 영향력이 가장 크다. 알스톰에스카는 APT센터에서 개발한 기술을 바탕으로 전력의 수요와 공급을 모니터링하는 '시장운영시스템(MOS)'을 개발, 미국 전역 15개 발전소중 14개에 공급했다. 정지영 기자 coo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