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상 현실' 수술.교육.영화체험...'생활 속으로' .. 실제 비슷

앞으로 10년 이내에 찰리 채플린이 아카데미상 남우주연상을 받을 수 있다. 오드리 햅번이 여우주연상을 받을지도 모른다. 죽은 배우들이 상을 받는다니 믿기지 않지만 충분히 가능한 얘기다. 홀로그램으로 만든 '가상배우'들이 상을 휩쓸 가능성도 있다. 불 속으로 뛰어들고 벼랑에서 뛰어내리는 스턴트맨은 앞으로 2,3년이면 찾아보기 어렵게 된다. 이런 일이 가능한 것은 가상현실 덕분이다. 가상현실(Virtual Reality)이란 가상공간에서 실현되는 '진짜 같은 가짜세상'를 말한다. 애니메이션 입체영상 입체음향 모션싱크(영상과 일치하는 움직임) 등의 기술이 결합된 가상현실은 실제 못잖은 현실감을 준다. 채플린이나 햅번이 나오는 영화는 애니메이션 기술이 조금만 정교해져도 만들 수 있다. 가상현실은 지금 세계적으로 붐을 이루고 있다. 우리나라도 예외가 아니다. 90년대에도 가상현실 붐이 있었지만 그때는 기술이 뒷받침되지 않아 한때의 유행으로 끝나고 말았다.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가상현실이 산업현장에 적용되고 생활 속으로 파고들기 시작했다. 가상현실이 가장 널리 활용되는 분야는 영화 테마파크 게임 등 엔터테인먼트다. 지난해 여름 '가상배우'가 등장하는 '파이널 판타지'란 영화가 상영돼 화제가 된 적이 있다. 전문가들은 스필버그 감독의 '쥬라기공원'에 입체영상과 모션싱크 기술이 더해지면 관객들은 공룡에 쫓기면서 비명을 지르고 진땀을 흘리게 될 것이라고 말한다. 국내에서도 일부 영화사와 영화감독이 한국전자통신연구원 가상현실연구부의 도움으로 특수효과를 제작하고 있다. 테마파크에서는 가상현실이 이미 현실이 됐다. 미국 LA에 있는 유니버설스튜디오는 공룡들이 우글거리는 곳을 탐험할 수 있는 가상현실공간을 만들어 놓았다. 영화 '터미네이터'에 나오는 장면을 재현하는 가상공간도 있다. 고글(입체안경)로 입체영상을 들여다보고 있노라면 영화에서처럼 오토바이가 튀어나오고 폭탄이 터지고 화약 냄새가 장내에 퍼지기도 한다. 엔터테인먼트 못지않게 가상현실이 널리 활용되는 분야로 국방을 꼽을 수 있다. 요즘 군인들은 가상공간에서 전차 운전이나 전투기 조정을 익히고 대포를 쏘아보기도 한다. 그만큼 훈련 효과를 높일 수 있고 훈련에 드는 비용을 절감할 수 있다. 신기술 개발도 한창이다. 벤처기업 디지털선일은 육군 모의훈련 시스템을 개발하고 있고 M&D인포메이션은 훈련기 시뮬레이션, 방공망 관제시스템 시뮬레이션, 육군 워게임 모델 개발을 추진하고 있다. 가상현실은 안전교육에도 활용되고 있다. 한국산업안전공단은 지난해 가상안전체험관을 개설, 근로자 학생 등 1만4천여명에게 안전교육을 실시했다. 피교육자들은 고글을 쓰고 조이스틱을 쥐고 가상현실 영상을 보면서 프레스작업 용접 학교생활 가정생활 등에서 발생할 수 있는 안전사고를 생생하게 체험할 수 있다. 공단은 피교육자들이 좋은 반응을 보임에 따라 올 상반기중 대전 광주 대구에도 똑같은 체험관을 개설키로 했다. 설계실에서도 가상현실 활용이 확산되고 있다. 자동차업체들은 가상현실을 이용해 신차모형을 만들고 시뮬레이션을 함으로써 설계기간 단축 및 비용절감 효과를 거두고 있다. 독일 프라호노프연구소는 이보다 한 단계 앞선 기술을 개발하고 있다. 이 연구소는 고글과 '글러브'(촉감을 전해주는 장갑)를 끼고 '케이브'라는 육면체 가상공간에 들어가 이 부품 저 부품을 끼워보며 자동차를 조립해 볼 수 있는 기술을 개발해 시험하고 있다. 의료분야에서도 가상현실을 이용하려는 움직임이 활발하다. 서울 백병원은 고소공포증 환자 치료에 이 기술을 활용, 효과를 보고 있다. 환자가 가상공간에서 차츰차츰 더 높은 곳에 익숙해지게 함으로써 공포증에서 벗어나게 하는 방식이다. 한국과학기술원에서는 현재 가상수술 기술을 개발하고 있다. 가상인체를 들여다보고 실제 수술할 때의 촉감을 느끼면서 수술하는 기술이다. 이 기술이 상용화되면 의대생들은 공포감과 역겨움을 억누르며 시체를 놓고 수술 실습을 하지 않아도 된다. 원격수술도 가능해진다. 가상현실은 이밖에 사이버모델하우스, 사이버박물관, 가상도시, 인터넷쇼핑몰 진열대 등에 활용되고 있다. 현재로서는 대용량 데이터 전송 기술이 부족해 각광받지는 못하고 있다. 그러나 수년내에 루브르박물관에 가지 않고도 안방에서 전시품을 보며 감탄하게 될 날이 멀지 않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또 가상도시의 가상공간을 사고파는 시대가 올 것이라고 얘기한다. 가상현실에 관한한 우리나라도 상당한 수준에 올라 있다. 한국전자통신연구원 가상현실연구부의 김현빈 부장은 "미국 일본 독일의 가상현실 기술 수준을 1백으로 치면 우리나라는 입체음향에서는 거의 비슷하고 이미지에서는 85점, 모션 시뮬레이션에서는 75점 가?된다"면서 "정부 업계 학계와 연구소가 합심하면 충분히 따라잡을 수 있다"고 말했다. 김광현 기자 kh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