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인 탐구] 홍석주 <조흥은행장> .. '洪 행장의 일과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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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석주 조흥은행장 내정자의 첫인상은 '차돌'을 연상시킨다.
차갑다는 것이 아니라 빈틈이 없다는 뜻이다.
기획통에 걸맞은 분위기를 풍긴다.
반듯한 인상과 막힘 없는 어조, 금융산업의 현재와 미래에 대한 풍부한 식견과 달변은 그가 금융과도기에 요구되는 '은행장 수업'을 제대로 받았다는 느낌을 주기에 충분하다.
실제가 그렇다.
그는 조흥은행에 입행한 이후 엘리트코스를 밟아왔다.
서울대 경영학과를 졸업한 해인 1976년 3월 조흥은행에 들어갔다.
은행에 적(籍)을 두고는 해군장교로 군대를 다녀왔다.
그리고 1983년 조흥은행의 '인재육성 프로그램 1호'로 선정돼 미국 최고의 명문 경영대학원인 와튼스쿨에서 MBA(경영학석사)를 받았다.
그 뒤로 국제부 런던지점 종합기획부 등 국제와 기획관련 부서에서만 일해 왔다.
런던지점에 있을 때는 장영자 사건의 후유증을, 종합기획부에 근무할 때는 외환위기 후유증을 치유하는데 주력했다.
그런 만큼 위기관리 능력이 뛰어나다.
그러나 홍 행장내정자의 내면은 여리고 자상하다.
한때 조흥은행 직원들 사이에서는 "홍 상무를 만나려거든 일요일 오전 청계산 근처에 있는 하나로마트에 가라"는 말이 돌았다.
매주 일요일이면 어김없이 가족과 함께 청계산에 오른 것.
그만큼 가정적이라는 얘기다.
비단 가족에게뿐만 아니다.
직원에게도 마찬가지다.
그는 기획재무본부장 시절 매달 직원 1명에게 업무추진비를 쪼개 오페라나 뮤지컬 티켓을 선물했다.
매일 오후 3시30분에는 일손을 놓고 모든 직원들과 '티타임'을 가졌다.
농담도 하고 우스갯소리를 하며 긴장을 푼다.
"놀 땐 놀고 일할 땐 열심히 하자"는 뜻에서란다.
"신세대 은행장답게 술문화도 바꿔 나갈 것"이라고 다짐하는 그의 주량은 잘해야 폭탄주 2∼3잔 정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