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CEO 强國을 만들자 .. 李昌洋 <KAIST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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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昌洋
지난 10여년 동안의 경기침체 속에서 함께 경쟁력을 잃어가던 일본의 자동차산업이 서서히 기운을 차리고 있다.
이는 이윤 내기가 쉽지 않은 자동차산업의 경쟁양상을 고려할 때 주목할 만한 일이다.
지난 1900년께 시작되어 1백년이 넘는 역사를 가진 자동차산업은 이미 40년대를 기점으로 굵직굵직한 기술혁신이 마감되었고,이제는 대규모 합병 등 대형화를 통한 원가 절감과 치열한 판매경쟁에 돌입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일본 자동차회사들이 성공적인 구조조정을 통해 서서히 경쟁력을 되찾고 있는 것을 두고 언론 등 많은 사람들의 시선은 이들 회사에 영입된 '용병 CEO'에 집중되고 있고,기업의 성패에 있어 CEO의 중요성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로 주목하고 있다.
닛산자동차의 카를로스 곤 사장을 시작으로 하나 둘 수입된 외국인 CEO들이 힘 빠진 일본 자동차회사에 생기를 불어넣고 있고,자동차 강국으로서의 명예 탈환까지도 노리고 있다는 것이다.
CEO의 중요성이 크게 부각되는 것은 왜일까.
이는 경쟁력의 원천과 함께 CEO의 역할이 근본적으로 바뀌고 있기 때문이다.
종래의 대량생산체제에서는 노동과 자본이 경쟁력의 원천이었고,값싼 양질의 노동과 대규모의 설비를 결합해 주로 가격경쟁력으로 승부하는 것이 경쟁의 방식이었다.
따라서 CEO의 역할은 이들 생산요소를 값싸게 확보하여 잘 '관리'하는 것이었고,경영학 석사를 MBA(Master of Business Administration)로 부르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경쟁방식은 더 이상 적용되지 않게 되었다.
경쟁력의 원천은 기술과 지식으로 바뀌었고 노동과 자본이 담당했던 생산은 아웃소싱이 가능하게 되었다.
이에 따라 CEO의 역할도 경쟁기업들보다 앞선 기술력을 유지하면서 장기적인 성장 기술의 방향을 간파하고,이를 효과적으로 확보하는 것으로 바뀌었다.
즉 동태적인 기술경쟁력의 확보가 CEO의 핵심적인 역할이며,이 부문에서의 CEO 능력 차이가 기업간 경쟁을 좌우하면서 극명하게 드러나게 될 것임을 의미한다.
우리도 이제는 CEO 인적 자본의 질과 양,그리고 그 양성 시스템에 대한 면밀한 분석과 전략적인 대응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우리에게도 경제개발기의 창업기업가들과 성공적인 구조조정으로 경제위기를 극복한 유능한 CEO들이 있었다.
또 삼성전자 등 일부 기업들의 CEO들은 세계적인 수준에 손색 없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그러나 아직은 세계 수준의 CEO가 크게 부족한 상황이며,짧은 기간에 CEO의 질과 양을 높이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아직도 우리는 CEO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고,CEO시장(市場)등 CEO에 대한 평가체제도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가장 큰 문제는 우리의 열악한 CEO 양성 인프라다.
우리는 미래의 유능한 CEO를 길러내고 현 CEO들의 수준을 지속적으로 높이기 위한 세계적 수준의 경영교육은커녕 주요 경쟁국들에도 훨씬 못 미치는 경영교육 인프라를 갖고 있다.
싱가포르와 대만에는 이미 1백명 이상의 국내외 교수를 보유한 경영대학이 여럿 있고,중국의 경영대학도 만만찮다.
그러나 세계 10위권 경제규모에 어울리지 않게 기껏해야 40명 정도의 교수와 전통적인 경영학 교과 중심의 우리 경영대학들로는 세계 수준의 CEO를 길러내기 어렵다.
세계 수준의 경영대학이 없는 경제선진국을 찾아볼 수 없듯이 경영교육 인프라 확충을 더 이상 미뤄서는 안된다.
싱가포르의 리콴유 총리가 그랬듯이 정치지도자와 정부는 유능한 CEO의 확보가 경제의 초석임을 인식하고 이에 대한 전략을 제시해야 한다.
재계도 유능한 인재가 양성되기만을 기다리기보다는 이에 적극 참여해야 한다.
특히 그동안 대다수의 국내 우수인력을 차지해온 대기업그룹들은 그 과실의 일부를 경제전체를 위한 CEO 양성에 환원하는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야 한다.
이제는 CEO 강국(强國) 첫 걸음인 세계 수준의 경영대학을 갖는데 정치지도자와 기업가들이 앞장설 때다.
drcylee@kornet.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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