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아침에] 텔레비전 '안식月'을 갖자 .. 鄭鎭弘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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鄭鎭弘
내가 살고 있는 아파트 거실에서 TV를 치운 지 꼭 한달이 되었다.
지난 한달 동안 이름하여 'TV 안식월'을 가진 셈이다.
물론 처음에는 어색했다.
아침에 일어나면 으레 TV를 켜놓고 자막으로 나오는 시계에 맞춰 출근준비를 하곤 했던 나였다.
식사 때가 되면 예외없이 TV를 켠채 식사를 해야 직성이 풀렸다.
또 아무도 없을 때는 보지도 않으면서 일부러 TV를 켜놓고 있는 때도 적지 않았다.
그런가 하면 저녁나절이 되면 '여인천하'등 드라마를 보기 위해 서둘러 집으로 들어가던 나였다.
그리고 으레껏 주말이면 오전 2∼3시까지 TV를 시청하는 때가 적지 않았다.
최근 한 조사에 따르면 한국인의 일일 평균 TV시청 시간은 3시간20분이라고 한다.
이것에 비해 보더라도 나는 분명 '헤비 뷰어(heavy-viewer)'였다.
그런 내가 TV 없이 한달을 버틴 것이다.
아니 한달을 잘 지냈다.
그 한달 사이에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보자.먼저 몸무게가 1.5㎏ 줄었다.
TV를 보며 아무 생각없이 간식까지 하면서 우두커니 넋놓고 앉아 있거나,소파에 누워 있는 시간이 줄었기 때문이다.
당연히 생활패턴도 바뀌었다.
저녁식사 후 9시 뉴스를 보고서도 모자라 사실상 내용의 차이가 별반없는 마감뉴스까지 챙겨 보고서야 늦게 잠자리에 들던 버릇이 없어졌다.
책 읽는 습관도 변했다.
양적으로 보자면 평소에 읽던 것보다 2.5배 내지 3배 가량 책을 더 보게 되었다.
한주에 한권 읽던 책을 두 세권 읽게 된 것이다.
질적으로 보더라도 '책을 읽다가 TV에 한 눈 팔다가'하는 식의 산만한 책읽기가 아니라 전적으로 책 자체에 몰입할 수 있게 되었다.
물론 아내와 이야기하는 시간도 늘었다.
덕분에 다소 불필요한 실랑이도 약간 늘긴 했지만 말이다.
그 뿐인가.
운동할 수 있는 시간도 더 여유롭게 확보되었다.
시간에 쫓기듯 하던 운동을 느긋하게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TV를 보지 않는다고 세상과 담 쌓고 사는 것은 물론 아니다.
세상 돌아가는 사정을 아는데는 인터넷과 신문,그리고 라디오로 충분하다.
아니 그것만으로도 넘친다.
인터넷에서 경제지 일간지 할 것 없이 종류별로 정보서치를 하는데 1시간이면 족하다.
차를 타고 이동하면서 라디오로 중간중간 최신 뉴스를 접하면 금상첨화다.
TV를 외면하면 트렌드를 놓치지 않을까 하고 걱정할 필요도 없다.
대학로,신촌,홍대앞,압구정,강남역 등지를 반나절만 휙 둘러봐도 트렌드는 어김없이 잡힌다.
지상파TV 5개,지역민방 10개,케이블TV 1백여개,위성TV 84개… 케이블과 위성에 중복 방영되는 채널을 뺀다 하더라도 족히 1백70여개가 넘는 다채널 TV시대다.
이런 시대에 살면서 TV플러그를 뽑고 안식월을 가지라고 말하는 것이 시류와 세태에 어긋나는 것이라고 생각할지 모른다.
물론 안식월을 가지라는 것이 영원히 TV와 담 쌓고 살라는 말은 아니다.
아무리 좋은 것도 좀 떨어져보고 소원해봐야 진짜 좋은 줄 아는 것처럼,설령 TV가 제 아무리 좋은 것일지라도 좀 꺼보고 멀리해 봐야 더 좋게 더 잘 활용할 수 있지 않을까.
'TV를 시청하면 뇌회전이 느려진다'는 다소 논란있는 의학통계도 잊을 만하면 고개 내밀길 십수년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TV는 건재하고 우리 삶에 대한 TV의 영향력은 지대하다 못해 막강하다.
신문에 수년동안 글을 써도 아는 척 하는 사람은 손을 꼽지만,TV에서 특강이라도 한번 하고나면 지하철 안에서도 자리를 양보받는게 요즘 세상이다.
하지만 나는 바로 그런 TV와 절연해 보라고 제의한다.
아니 강권한다.
우리 삶 속에서 당연하게 자리잡고 익숙해져 있는 것과 결연히 결별해 볼 줄 알아야 변화도 가능하다.
우리 사회는 많이 변했다.
그러나 정작 사람들은 좀처럼 변하지 않았다.
그 좀처럼 변하지 않은 사람들을 바꾸기 위해서라도 오늘 우리 시대의 사람들에게 가장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는 TV를 단 한달만 끊어보자는 것이다.
그런다고 TV방송국이 문닫지는 않는다.
담배를 끊는 것처럼 TV도 끊을 수 있다.
나는 이왕 나선 김에 'TV 안식월'이 아니라 'TV 안식년'으로 내쳐 나가볼 참이다.
당신도 함께 해보자.
atombit@neti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