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칼럼] 거듭나야 할 노동운동 .. 鄭求鉉 <연세대 경영학 교수>

한국전력의 민영화를 막으려는 발전노조 파업이 노정간 합의를 통해서 종결된 것은 정말 다행한 일이다. 애당초 국유기업의 민영화라는 정부 정책은 파업의 대상이 될 수 없었으며,정부가 이러한 정책을 흔들림 없이 관철시킨 것은 우리 경제의 장래를 생각할 때 아주 잘 한 일이다. 또 총파업이라는 파국 직전에 경제와 국민을 위해 합의를 도출하고 파업을 철회한 노조 지도자들도 매우 현명한 판단을 했다. 민주당 어느 대선 경선후보 말대로 노동운동이 핍박 받던 시대가 있었다. 1987년 이전 권위주의 시대였다. 노동3권이 보장 받지 못했고,노동운동 하던 사람들은 당시의 정보부·경찰 등의 기관으로부터 물리적으로,그리고 신분상에 상당한 어려움을 겪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민주화가 진행되고 노동운동이 자유로워진지도 15년이 지났다. 민주화 초기에는 그 동안의 억눌렸던 욕구가 폭발,과격한 노동운동이 있었던 것을 이해할 수 있다. 그 때문에 물론 우리 경제는 상당한 대가를 치렀으며,이는 부분적으로 1997년 경제위기가 오는 원인이 되기도 했다. 1972∼1987년의 15년 세월과,1987∼2002년의 15년 세월을 비교해 보면 한국이 얼마나 성숙한 정치경제가 됐는지를 새삼 느끼게 된다. 앞의 권위주의 시대에 나라의 운명에 관련된 중요한 의사결정은 군부로 대표되는 정치 엘리트,경제개발을 신앙으로 삼던 경제관료와 경제활동의 주역이었던 대기업집단의 세 세력에 의해 이루어졌었다. 그러나 이들 3자의 관계는 수직적이었다. 즉 군부-관료-대기업이 그 순서대로 힘이 있었다. 그런 점에서 일본의 국가지배구조와는 달랐다. 일본의 경우에는 정치인(국회),관료와 대기업 3자간의 관계가 수평적이었고,또한 서로 간에 견제와 균형을 이뤘던 것이다. 그래서 이 3자 관계를 '철의 삼각형'이라고 불렀으며,2차 대전 후 일본의 국가지배구조의 기본 틀을 형성해 왔다. 그러나 일본의 국가지배구조는 지나치게 배타적·국가중심적이었기 때문에 글로벌화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해 10년이 넘도록 경제침체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민주화 이후 한국의 수직적인 3자 지배구조는 이제 더 다변화되고 수평적인 지배구조로 바뀌었다. 어느 한 집단도 독점적이고 우월한 지배력을 행사하지 못하면서 서로 견제와 균형을 이루는 새로운 국가지배구조가 형성되고 있는 것이다. 현재 한국의 국가지배구조는 5각 구도라고 볼 수 있다. 전통적 3강인 정치인-관료-대기업이 더 수평적인 관계를 갖게 됐고,거기에다 노동조합과 시민단체가 가세됐다. 여기서 시민단체에는 조직된 NGO와 넓은 의미의 지식인집단도 포함된다. 이들 5개 주역들은 앞으로 협력과 견제를 하면서 국가와 국민의 장래를 좌우할 중요한 의사결정들을 해나가야 하는 것이며,그런 의미에서 각자가 막중한 책임을 지고 있는 것이다. 요즈음 기업 경쟁력의 원천은 결국은 인적자원이며,지식정보시대에는 사람 만이 창의력과 경쟁력의 원천이 되는 것이다. 노동운동도 이러한 변화를 읽고 조합원의 역량증진에 관심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또한 노동시장의 유연화가 장기적으로는 고용을 늘리는 길이라는 점도 인식해야 할 것이다. 노동운동의 지도자들이 이러한 시대의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면 노동조합 자체가 근로자들로부터 외면당할 수도 있다. 실제로 노동연구원 자료에 의하면 우리나라의 노동조합원 수는 노동운동이 폭발적이었던 1989년에 1백93만명으로 피크를 이룬 후 차츰 감소해 2000년에는 1백53만명으로 줄었으며,총 취업자 중에서 노동조합에 가입된 근로자 비율도 당시의 10%대에서 최근에는 7%대로 낮아졌다. 노동운동이 조합원의 복지보다 이념적 내지는 정치적 투쟁을 우선시한다면,조합원 이탈과 노동운동 자체의 쇠퇴로 귀결될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노동조합이 애써 획득해 놓은 국가지배구조의 일익마저 포기하는 결과가 초래될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민주국가에서는 불법행동을 자주 하는 집단을 정당한 파트너로 인정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번 발전노조 파업의 종식을 계기로 한국의 노동운동이 새로운 각성을 바탕으로 다시 태어나기를 기대한다. jungkh@yonsei.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