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칼 밀러(閔丙渴)
입력
수정
벽안의 나무할아버지 민병갈(閔丙渴ㆍCarl Ferris Miller)씨가 세상을 떠났다.
평생 결혼도 하지 않은 채 심고 가꿔 만든 아름다운 나무천국 '천리포수목원'만 남긴 채.
그가 이 땅에 첫발을 디딘 건 1945년.미국 펜실베이니아주 피츠턴 태생으로 일본인의 재산 반출을 막기 위해 잠시 왔던 24세의 젊은 해군장교는 그러나 곧 한국의 자연에 반했다.
결국 미 군정청과 유엔 군사원조국을 거쳐 한국은행(52∼82년)에 근무하던 79년 귀화했다.
'민병갈'이란 이름은 성(姓)을 앞세운 미국이름 '밀러 칼'의 한국식 발음인 동시에 민병도(閔丙燾) 전 한국은행 총재의 성과 돌림자를 따서 지은 것이다.
천리포수목원을 만든 건 62년부터.아무도 식물이 자원이라고 생각하지 않던 시절 그는 충남 태안군 소원면에 18만평 부지를 마련,천리포수목원을 조성했다.
'미래엔 식물자원 보유량이 국부(國富)의 척도가 될 것'이라며 국내식물 종자 수집에 나섰다.
또 각국에서 3천8백여종을 도입하고 호랑가시나무 등 새 품종을 개발해 국제학회에 등록했다.
그런가하면 세계목련학회 호랑가시나무학회 등 국제 학술대회를 유치, 한국의 식물자원을 세계에 알렸다.
지난해 암진단을 받은 뒤에도 주중에는 서울에서 굿모닝증권 고문으로 일하고 주말이면 내려와 나무를 돌봤다.
그가 심고 키우고 가꾼 나무는 목련 4백50여종, 감탕나무 3백70여종등 7천2백여종 2천만그루.그의 사랑과 정성으로 사라져가는 국내의 나무와 풀 종자는 물론 전세계 희귀종들이 이 땅에 뿌리를 내리고 가지를 쳤다.
바닷가 야산은 아름답고 깊은 숲이 됐고 그 결과 천리포수목원은 세계수목협회로부터 아시아 최초의 '세계의 아름다운 수목원'으로 선정됐다.
주민등록증을 받은 외국인 1호, 아파서 김치를 못먹는 게 슬프다던,햇빛에 반짝이는 나뭇잎 사이를 걸어갈 때,목련꽃이 화사함을 뽐낼 때 가장 행복하다던,'한국의 자연과 결혼했다'던 그는 이제 갔다.
남은 건 한국의 미래를 위해 천리포수목원을 만든 그의 뜻이 헛되지 않도록 가꾸고 지키는 일이다.
박성희 논설위원 psh77@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