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대선 주자와 관료조직 .. 安世英 <서강대 국제통상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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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투사 출신의 두 정권이 범한 큰 실수 중의 하나는 관료조직을 잘 다루지 못했다는 것이다.
산업화의 열기와 군부독재의 암울함이 뒤섞였던 70∼80년대 관료와 민주화세력은 국가운영의 안(산업화)과 밖(민주화)에서 각자의 길을 걸었다.
과거 민주투사의 눈에 군부정권에 종사하는 관료들은 기회주의적이고 부패하게 보였다.
그래서 정권을 잡자마자 관료를 사정의 대상으로 불신하고,우선 비대한 관료조직부터 손보겠다고 칼을 빼 들었다.
관료조직을 단단히 장악하고 함께 뛰어야 할 집권 초기에 이런 해프닝을 벌였으니 조직보호본능이 강한 관료들은 우선 자기 조직부터 살리자고 갈팡질팡했고,통치자는 개혁의 추진에 필요한 관료의 적극적 동참을 얻는 데 실패했다.
지금 한창 열을 올리는 대선 주자 중 누가 정권을 잡든 이같은 실책은 되풀이되지 말아야 한다.
우선 정권만 바뀌면 여론환기용으로 상습적으로 등장해온 '관료 두드리기'는 차기 정부에서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유는 간단하다.
신문지상을 도배하는 각종 게이트가 말해주듯 '권력을 잡은 민주화세력이 그렇게 깨끗하지 못한 것이 드러났듯이 관료들도 그렇게 부패하지 않다'는 것을 국민들이 이제 알았기 때문이다.
진정 관료가 깨끗해지길 원한다면 조용히 집권층부터 모범을 보이고 법과 제도를 착실히 운영하면 된다.
다음으로 민영화 등 산적한 차기정부의 개혁과제를 집권 초에 밀어붙이기 위해서는 정부조직개편을 대선 공약에 포함해 미리 확정하는 것이 좋다.
이렇게 함으로써 집권 후 조직개편 논의에 따른 시간낭비와 관료들의 동요를 피할 수 있다.
현재의 정부조직은 우리 나라가 세계화,지식기반경제에 적응하는데 몇 가지 맹점을 가지고 있다.
첫째,경제가 글로벌화하고 복잡해지면 질수록 모든 정책을 총괄하는 사령탑이 필요하다.
그런데 우리는 어처구니없게도 외국이 칭찬하던 기획원을 사령탑으로 한 재무부-상공부의 절묘한 삼각체제를 깜짝쇼(!)에 의해 해체해 버렸다.
환란 이후 옛 재경원을 금감위,기획예산처 등으로 어지럽게 갈라놓았다 사령탑의 필요성을 느끼고 부랴부랴 재경부를 부총리급으로 격상했다.
그러나 예산권과 조정기능이 따로 놀아 뭔가 미흡하다.
특히 차기정권의 과제가 금융개혁중심에서 사회전반의 개혁을 통한 국가경쟁력 향상으로 격상된다는 점을 고려할 때 예산권을 바탕으로 막강한 조정능력을 가진 총사령탑 부처는 반드시 생겨나야 한다.
둘째,명실상부한 통상대국이 되기 위해서는 대외통상을 총괄하는 미국의 USTR 같은 강력한 조직이 생겨야 한다.
케네디 대통령 때까지만 해도 통상업무는 국무부에 속했다.
그런데 국무부가 통상이익보다 동서냉전하의 안보외교를 우선한다는 경제계와 의회의 불만 때문에 USTR가 생겨났다.
그런데 우리는 거꾸로 경제부처에 있던 통상업무를 통상교섭본부에 옮겨 놓았다.
덕분에 화려한 '외교형 통상성과'는 많으나,자유무역협정 등 우리기업의 이익과 직결된 경제형 통상성과는 기대에 못 미친다.
마지막으로 정보화가 일반산업으로 확산되고 산업간 융합현상이 심화됨에 따라 정보통신부 산업자원부 과학기술부의 기능도 조정되어야 한다.
정보화,기술개발 등에서 세 부처가 비슷한 일들을 경쟁적으로 많이 벌이고 있다.
묘하게도 이 세 부처는 지난 정부조직 개편 때 호되게 당한 부처들이다.
사실 정통부는 우리 나라를 IT강국으로 만드는 데 일익을 했으나 우정사업이 분리되고 주파수를 매각하고 나면 고유 업무가 너무 줄어든다.
또한 산업계와 밀착되지 않는 기술개발은 의미가 없다는 명분에 과기부의 입지는 계속 밀리고 있다.
산자부도 실물총괄부처로 아직까지 확실한 자리 매김을 못하고 있다.
집권은 잘 훈련된 관료조직을 통솔할 지휘봉을 잡고,투쟁 대신 통치를 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대선 주자들은 야당시절의 그 투쟁정신과 그 인맥으론 효율적 통치를 할 수 없다는 교훈을 되새기며 지금부터 관료조직을 잘 부리는 방법을 배워나가야 하겠다.
syahn@ccs.sogang.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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