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들리는 협상전선] (21) 4년 끈 대우車 매각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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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린 애셋'에 숨겨진 미국 제너럴모터스(GM)의 두번째 노림수는 대우자동차의 자발적인 구조조정과 경직된 노사관계의 해소였다.
GM은 정리해고를 포함한 대우차 구조조정을 공식적이고 노골적으로 요구할 입장이 못됐다.
요구할 법적 권한이 없기도 했지만 단기적으로 한국의 강성 노조를 자극해 얻을 실익이 별로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GM은 그러나 내부적으로 '경직된 노사관계, 특히 노조의 경영간섭 문제를 제거하지 않고는 인수하기 어렵다'는 입장을 확고하게 정리해 놓고 있었다.
2000년 12월13일 GM의 릭 왜고너 사장은 로이터통신을 통해 "대우차에는 여전히 관심이 있다. 그러나 대우차는 해결해야 할 문제들이 많다. 그 문제들이 언제 해결될지 잘 모르겠다"고 말했다.
외신을 통해 전달되는 GM의 공식 입장은 이처럼 답답할 정도로 막연한 것들이었다.
그리고 대우차 매각사무국이나 채권단측엔 느긋한 태도로 '클린 애셋' 인수만을 강조했다.
결국 시간이 필요했다.
정부나 채권단은 심한 압박감을 느꼈지만 구조조정이 쉬운 일은 아니었다.
이 때문에 대우차가 법정관리를 신청한 2000년 11월부터 다음해 5월까지 약 6개월간 협상은 장기 소강국면에 빠져들었다.
채권단은 법정관리 신청과 동시에 아더앤더슨에 대우차 구조조정 용역을 맡겼다.
구조조정의 윤곽은 누가 봐도 뻔한 것이었다.
경쟁력이 없는 과잉 생산시설을 없애고 부실 해외법인들을 정리하는 것이었다.
부평공장 폐쇄설과 대규모 정리해고설이 나돈 것도 이즈음이다.
정리해고 부분은 누구도 섣불리 건드리기 어려운 '뜨거운 감자'였다.
인력 정리가 불가피하다는 사실은 모두가 인정했지만 방법과 규모가 문제였다.
자금이 완전 바닥난 대우차는 1999년 1월 이후 2년 동안 겨우 2천3백명 정도를 줄이는데 그친 상태였다.
마침내 대우차 최고경영자이자 법정관리인으로 추천된 이종대 회장은 2001년 1월16일 정리해고의 칼을 빼들었다.
노동부 인천사무소에 2천7백94명을 강제 정리하겠다는 신고서를 제출한 것.
곧 노조의 전면 파업이 시작됐고 2월19일에는 부평공장에 경찰병력이 투입됐다.
3월에는 아더앤더슨의 용역보고서가 나왔다.
충격적인 내용이었다.
'대우차가 살기 위해선 생산능력을 절반으로 줄여야 한다. 이를 위해 부평공장을 폐쇄하고 폴란드 인도공장에서 손을 떼야 한다'
GM측은 '그 봐라'는 듯이 미소를 지었다.
앨런 페리튼 본부장은 그제서야 "대우차는 과잉설비를 해소해야 한다"고 한마디 거들었다.
GM은 대우차 구조조정이 어느 정도 윤곽을 드러내자 '클린 애셋 인수'의 부속조항인 'GM 인수 후 대우차의 성공적인 정상화'를 거론하기 시작했다.
대우차 인수골격이 자신이 원하는 구도대로 큰 뼈대가 잡히자 이제는 '살과 근육을 붙일 차례'(채권단 협상관계자)라고 판단한 듯했다.
하지만 3월 들어서도 GM은 본격적인 실무협상에 나서지 않았다.
채권단은 이미 2월 말로 실사가 끝난 상태였기 때문에 GM이 곧 최종 인수제안서를 낼 것으로 봤지만 GM은 계속 미적거렸다.
당시 GM은 '클린 애셋'을 앞세워 내심 원하는 바를 얻었지만 여전히 뭔가 부족하다는 느낌을 갖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세계적인 불경기에 GM 내부의 구조조정까지 겹치면서 '한국의 골칫덩어리 기업'에 투자해 재미를 보겠느냐는 의구심이 들었던 모양이다.
대우차가 GM의 글로벌 전략에 걸맞은 형태로 리모델링이 될지에 대해서도 확신을 갖지 못한 듯하다.
그리하여 석 달 동안 뜸을 들여 5월 말 GM이 제출한 인수제안서에는 한국측이 도저히 수용하기 어려운 조건들이 담기게 된다.
조일훈 기자 ji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