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가계대출의 경제학 .. 林俊煥 <서강대 경제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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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가계대출을 억제하기 위한 정책방안이 제시됐다.
가계대출 급증에 따른 과잉유동성 가능성과 금융자원의 비생산적 활용이라는 부작용을 우려해서다.
그러나 이는 과장된 면이 있다.
가계부채의 추이를 보자.
가계부문의 금융부채 잔액은 명목기준이나 실질기준 모두 지난 4년 간 높은 신장률을 보였다.
명목잔액이 연평균 13%의 증가율을 보였는데 최근 들어서는 이를 웃돌고 있다.
작년 3분기 말 현재 명목잔액은 3백35조원으로 전년 동기대비 16%나 증가했다.
한편 실질기준으로 볼 때 가계부문 금융부채잔액은 매년 10%씩 증가했다.
이는 가계부채의 실질가치가 물가상승과 관계 없이 매년 10% 늘어난 것을 의미한다.
만일 이 기간 평균 실질경제성장률을 5∼6%로 본다면,가계부채의 순수증가율은 4% 내지 5%라고 볼 수 있다.
실질경제성장률은 같은 비율만큼 소득의 증가를 가져와 소득증가분을 통해 부채를 상환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걱정할 대상은 4∼5%의 가계부채 증가분이다.
한편 우려할만한 가계부채 증가분은 소비자금융의 발달과 저금리시대 하에서 가계부문 대출상환 능력의 과대평가에서 각각 기인한다고 볼 수 있는데 전자는 그리 염려할 것이 아니라고 본다.
보수적인 담보정책과 경기회복 기대에 따른 담보가치의 상승으로 정당화될 수 있기 때문이다.
97년 외환위기발생 이후 금융규제완화가 가속화되는 과정에서 다양한 종류의 가계금융상품,특히 주택담보대출시장의 급성장으로 가계대출의 만기가 보다 장기화됐고(3년에서 30년 만기),주택담보대출 규모도 급증했다.
예컨대 과거에는 없던 중도금 상환용 신규 대출상품이 생겼다.
또 과거엔 명의이전 전에는 담보설정이 불가능했던 것이,은행의 내규변경으로 명의이전 전이라도 담보설정이 가능한 새로운 대출상품도 나왔다.
공급측면에서도 은행들이 위험관리차원에서 위험가중치가 낮은 가계부문 대출비중을 증대시킨 것 역시 무시할 수 없다.
따라서 가계부채 급증에 따른 우려는 가계부문 '화폐적 환상(money illusion)'의 부작용에서 찾아볼 수 있다.
특히 지난 2000년 금리가 전례 없이 낮은 수준을 보이자 가계부문이 자신의 부채상환능력을 과신,가계차입을 늘렸다.
가계부문이 실질금리 대신 명목금리를 보고 자금을 차입한 것이다.
하지만 현재 명목금리가 낮다는 것은 실질경제성장률이 낮을 뿐더러 이로 인해 저물가가 지속되는 것을 반영하는데,이는 가계측면에서 볼 때 소득 창출능력과 가계의 부채상환능력이 낮다는 것을 의미한다.
즉 실질금리가 차입결정의 중요한 변수임에도 불구하고 명목금리인 저금리를 기준으로 부채를 증대시킨 것이 가계의 부채상환능력을 과대평가하게 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얼마 전 통화당국이 금리인상을 시사하여 명목금리가 상향조정되고 있거나 상향조정 기대감이 작용됨으로써 '화폐적 환상'도 깨지고 있어 가계부문의 과잉차입은 걱정할만한 수준이 아니다.
이 밖에도 민간부문의 또다른 경제주체인 기업부문의 부채증가세가 둔화되고 있어 민간부문 전체로 볼 때 과잉유동성을 우려하는 것은 설득력이 약하다.
가계부문보다 기업부채부문이 경제내 과잉유동성을 결정하는 중요 요인이라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현재 기업들은 직접금융시장에서 조달한 자금을 풍부하게 확보하고 있다.
따라서 가계대출이 기업대출을 위축시킨다고 볼 수 없다.
마지막으로 가계부문의 자금수요를 비생산적이라고 보는 견해는,자금 공급이 극히 제한된 개발금융시대의 시각이라고 할 수 있다.
오늘날은 국내자본시장이 해외자본시장과 밀접하게 연계돼 있어 사실상 자금공급의 제한을 받지 않는다.
또 소비금융이 주택 자동차 냉장고 등 내구재 구입에 활용된다면 궁극적으로 기업투자를 자극한다는 점에서 내구재 소비와 투자는 보완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투자용 기업대출만이 생산적'이라고 보는 것은 옳지 않다.
jhim@ccs.sogang.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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