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코너] 왕따 고이즈미


봄비가 내린 21일 오전 8시30분.고이즈미 준이치로 일본총리의 전용차가 미끄러지듯 야스쿠니신사로 들어왔다.


고이즈미 총리는 입을 굳게 다물고 시선을 전면에 고정시킨 채 본전으로 향했다.
참배 후 기자회견이 열렸다.


"내각총리대신 고이즈미 준이치로의 자격입니다."


고이즈미 총리의 이날 참배는 여러 정황으로 볼 때 충격적이다.시기와 주변 정세 등을 감안할 때 '허를 찔렀다'고 할 만큼 전격적이었다.
우선 그는 언론의 관심이 약해진 일요일 아침을 택했다. 또 하나는 방식이다. 그는 21일부터 열리는 야스쿠니신사 봄 대제의 참석을 요청받았지만 가지 않겠다고 말했었다. 때문에 일본 언론도 참배시기를 헛짚었다.


주일 한국특파원단과 가진 공동회견에선 "정해진 원칙이나 방침은 없다"는 말로 얼버무렸다.


총리 측근은 이날이 시기적으로 좋다고 판단했을 뿐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참배는 치밀하게 준비했다는 인상을 지우기 어렵다.


작년 가을 한·일정상회담 때 그는 한국 여론의 싸늘한 분위기를 서울에서 두 눈으로 확인했다.


한달 전 다시 서울에 간 그는 우호를 강조했고,또 이를 위한 노력을 다짐했다.
일본 언론은 이날 참배로 한·일 월드컵 공동개최에 악영향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고 있다. 고이즈미 총리와 일본 정부는 타격이 없을 것이라고 강변하지만,협력과 열기에 냉기가 감돌 수밖에 없다는 판단에서다. 뒤집어 말하면 이번 참배는,양국간 우호와 협력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한 시점이라서 한국측의 반발은 일정 수준을 넘기 힘들 것이라는 계산을 깔고 있는 듯 하다.


20일 워싱턴에서 끝난 G7 재무장관 회담에서 일본은 참가국들로부터 세계 경제의 걸림돌로 몰매를 맞았다.


그렇지만 시오카와 마사주로 재무상은 외부 세계가 실상을 모른다고 둘러댔다.


일본인들은 소중한 덕목의 하나로 흔히 '정직'을 꼽는다.


하지만 외부에 비친 일본의 일그러진 인상 중 하나는 이중성이다.
신의와 약속을 자신들의 잣대로만 평가하고 들먹이는 한 고립을 면치 못한다는 것을 도쿄와 워싱턴발 뉴스는 일본에 시사하고 있다.


도쿄=양승득 특파원 yangs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