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칼럼] 동북아 經協 한국 역할..安忠榮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원장>

겨울이 가면 봄이 오는 것처럼,1세기 이상 상호 교류없이 얼어붙었던 동북아시아 지역에 경제 협력과 통합의 봄기운이 감돌고 있다. 중국의 오랜 역사 속 분열과 통합 과정을 '천하지세 분구필합(天下地勢 分久必合:천하 세력들이 분열된지 오래되면 이윽고 합쳐지게 마련)'이라고 했다. 동북아 국가들은 제국주의 식민지 시대와 냉전체제를 거치면서 상당 기간 이념과 체제에서 서로 다른 길을 걸어 왔다. 이 같은 상황에서 동북아 국가들간 경제 협력의 계기를 제공한 것은 중국이다. 오랫동안 폐쇄됐던 사회주의 계획경제가 개방·개혁 및 세계무역기구(WTO)에 가입함으로써 자본주의 경제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과 중국은 오는 8월 24일로 수교 10주년을 맞는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고 했다. 냉전체제 시대 우리는 중국을 '중공'이라고 부르며 문을 닫아 걸은 채 교역을 하지 않았으나,오늘날엔 수출에서 2위,수입에서 제3의 국가가 됐다. 중국은 세계 각국 산업시설과 자본을 흡수하는 일종의 거대한 '블랙홀'이 되고 있다. 인해전술식 저임금의 이점과 대규모 시장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일본과 한국 기업들도 생산설비를 중국에 잇따라 이전함으로써 동북아 산업지도가 다시 만들어지고 있다. 지난 97년 발생,아시아를 휩쓸었던 외환위기는 동아시아 국가들간 협력의 틀을 만드는 계기가 됐다. 이에 앞서 90년대 초에 밀어닥쳤던 '엔저 강풍'은 중국 위안화와 함께 동아시아 국가들의 통화를 경쟁적으로 평가절하케 했다. 세계 최대의 외환보유국인 일본 중국 홍콩 대만 등이 밀집돼 있었음에도 외환위기에 속수무책이었던 것이다. 동아시아 각국의 외환위기는 아세안 10개국 회의에 한·중·일이 손님으로 참석하게 되는 요인이 됐고,아세안+3 정상회담과 각료급 회담을 정례화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아세안+3의 경제권에서 동북아 3국은 지역내 국내총생산(GDP)의 90%에 육박하는 경제력을 지니고 있다. 그러므로 한·중·일 3국의 협력은 아세안+3 결속의 강도를 크게 높여주고 있다. 한국은 한·중·일 3개국 재무성 고위관리회담 정례화와,아세안+3국간 쌍무적 통화스와프에 합의하는 데 주도적 역할을 했다. 지난 달에는 경주에서 아세안+3 재경부 고위관리 및 3국의 관련 연구기관 네번째 회동도 개최했다. 지역내에 외환위기라는 화재가 발생하면 1차적으로 역내 자체 힘으로 진화하기 위한 통화스와프 장치가 구체적 결실을 보게 된 것이다. 한국과 일본은 위기가 발생했을 때 상대방 중앙은행에 자국통화를 맡기고 최대 70억달러에 해당하는 국제 유동성을 빌려주기로 했다. 중국과는 20억달러 수준으로 의견 접근을 보고 있다. 이 같은 시스템이 역내 국가들에 확산되도록 하기 위해 동아시아 각국은 자국의 외환보유구조,국제수지,금리,환율,성장,임금 등 주요 경제지표의 실상을 서로 보여주고 체크하며,문제가 발생하면 어떠한 조치를 취할 것인가를 논의하기로 했다. 지난 4년 동안 우리나라 금융부문은 많은 변신을 했다. 새로운 지배구조를 도입했고,경영성과에 따른 인센티브제를 실시하며 불량채권을 대폭 정리했다. 그리고 은행인력을 40% 이상 구조조정했다. 그 결과 우리의 금융산업구조는 아시아에서 가장 투명하고 건전화됐다. 우리나라가 앞으로도 기업 구조조정을 지속하고 은행을 더욱 클린화하면,우리와 비슷한 경제병을 앓아오고 있는 동북아 국가들에 좋은 처방전이 될 것이다. 중국이 동북아 경제통합의 계기를 제공하고,일본이 역내 분업에 적극 가담하며,한국이 경제병 치유의 노하우를 제공하면 동북아 통화스와프는 역내 공동통화,나아가 '아시아 통화기금'의 개념으로까지 발전될 수도 있을 것이다. 동북아지역 경제에는 때로 '꽃샘 추위'가 올 수도 있지만,역사의 물꼬는 협력의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 한·중·일 3국의 협력이 긴밀해 질수록 한국의 역할과 위상은 두드러질 것이다. 우리가 최근 발표했던 '동북아 비즈니스 허브'구상도 동북아 경제협력의 꽃을 잘 피워내는 방향으로 가다듬어져야 한다. 동북아 3국 경제협력의 틀이 가시화될수록 남북 통일 여건도 성숙해지는 부수 효과를 거둘 것이다. -------------------------------------------------------------- cyahn@kiep.g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