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 왜 강한가] (14) '相生의 노사관계'..최고수준 복지보장

'해당사항 없음.' 삼성전자가 매년 금융감독원에 제출하는 사업보고서 내용중 노동조합에 관한 사항에 대한 짤막한 답변이다. 현대자동차가 '가입인원 3만7천71명,상근인원 90명,소속연합단체 금속산업연맹(전국민주노동조합 총연맹)'으로 적시하고 있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삼성전자의 무노조 경영은 '관리의 삼성'이라는 이미지를 형성하는 핵심 축의 하나다. 삼성이 내·외부의 비판과 도전에도 불구하고 무노조 체제를 유지할 수 있는 원동력은 무엇인가. 구조조정본부 고위 관계자는 "노조가 생겨나는 것은 회사에 잘못되고 있는 부분이 있기 때문이란게 최고 경영진의 생각"이라고 말했다. 그래서 삼성은 다양한 복지정책을 통해 노조의 기능을 대체하고 인적 자원의 중요성에 대해 명확하게 인식하도록 CEO에게 요구하고 있다는 것이다. 삼성전자에서는 현장 생산직 여사원에 대해 '여공(女工)'이라는 표현을 사용하면 당장 인사위원회에 회부된다. 반드시 현장 오퍼레이터 등 '중성(中性)'적 호칭을 사용해야 한다. 말 한마디에 인간적 모멸감과 성차별을 느끼지 않도록 배려하는 것이다. 지난해 말 기준으로 삼성전자 전체 임직원 4만6천여명중 여성인력은 절반 수준인 2만1천여명. 이중 생산직 여사원이 1만4천명으로 30%에 달한다. 반도체 수율은 이들 현장 여사원의 손끝에서 나온다. ◆세포조직 '분임조'=삼성전자 구미공장. 단일규모로 세계 최대인 한해 3천6백만대의 휴대폰을 생산하는 곳이다. 이 사업장 전체 임직원 6천6백명중 3천명이 여성이다. 평균 연령 21.5세,평균 근속연수는 2.8년인 이들이 세계 최고의 품질을 가진 휴대폰을 완성한다. 완제품의 전원을 켜서 이상 여부를 직접 점검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1초 미만. 고사리 같은 손을 놀려 순식간에 10여개가 넘는 버튼을 누르며 작동시킨다. 순발력 있는 작업속도 못지 않게 여사원들은 소속팀별로 조직된 분임조 활동을 통해 품질개선의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다. 이중 대표적인 사례가 명성(明星)분임조. 애니콜이란 이름을 전세계에 별처럼 빛나게 하자는 의미를 담고 있다. 최고등급인 명성 슈퍼바이저(supervisor)는 가슴에 순금으로 된 배지를 달고 있다. 명성 슈퍼바이저가 되기 위해서는 2년간 평균 고과 B이상,분임및 제안활동 실적,근속연수 등과 같은 계량적 평가 외에 동료들로부터 추천을 받아야 한다. 상사가 아닌 동료들이 가장 뛰어난 현장사원을 뽑는 것이다. 업무에 대한 자긍심을 심어줌으로써 생산활동에 대한 적극적인 자세를 유도하고 조직에 대한 자부심과 로열티를 불어넣어주고 있는 것이다. 현재 명성슈퍼바이저의 숫자는 55명.올해 슈퍼바이저는 전사원 교육이 끝나는 내달중 사원들에 의해 뽑힐 예정이다. 분임조는 생산 효율을 극대화하는 세포조직이다. R&D(연구개발)부문에서 알지 못하는 현장 문제를 해결한다. '아가페'로 이름 붙여진 분임조의 경우 지난해 말 공정중 자재교환시간 단축을 통한 생산량 증대라는 과제를 자체 발굴,효율을 2배이상 높였다. 무선사업부내에는 이러한 분임조만 2백10개에 달한다. 반도체 사업부문의 경우도 기흥공장에만 9백20개가 넘는 분임조가 조직돼 있다. 분임장은 대부분 현장 여사원이다. 이중 '액티브(ACTIVE)' 분임조는 신입사원도 쉽고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재미있는 분임조활동의 틀을 구축,지난해 6백일 무사고작업 신기록을 세웠다. 기흥사업장에서만 지난해 총 1천4백3건의 제안이 나와 8백78억원의 원가절감을 이뤄냈다. 분임조는 사원들의 팀워크를 한 방향으로 만들면서 생산현장에서 발생하는 불만에서부터 가정생활의 어려움까지 해결하는 세포조직이다. 노조보다 더욱 치밀하게 사원들의 애로점을 '발굴'해서 해결하고 있다. "종업원들을 인간적으로 대우하고 내 회사라는 생각을 갖게 하면 신바람을 내면서 자율적으로 일을 한다.이익이 나면 종업원에게 혜택이 돌아가야 한다.동지애가 생겨나면 조직은 더욱 강해진다." 이건희 회장이 현장 방문때마다 강조하는 내용이다. ◆다양한 상담 채널=삼성전자가 지난해 복리후생비로 쓴 돈은 5백15억원.1인당 1백10만원이 넘는다. 총 급여비는 2조원이 넘는다. 급여와 복리후생에서 최고의 수준을 유지하려는 삼성때문에 임금 인플레가 가중된다는 다른 기업들의 불만이 터져 나올 정도다. 삼성본관 8층에는 여성 휴게실과 함께 여성 상담소가 따로 있다. 지난해 1월 국내기업에서 처음으로 설치된 여성상담소는 직장내 성희롱 예방과 여성인력의 활성화가 목적이다. 전화상담은 물론 24시간 사이버상담실을 운영하고 있다. 여성인력의 직장내 리더십 강화와 특화된 교육프로그램의 운영도 목표로 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또 20명의 노무사를 자체 보유하고 있다. 올해안으로 한국심리학회와 공동으로 노무상담사 과정을 개설할 예정이? 노조를 대신해 종업원의 의견을 청취할 수 있는 다양한 채널을 확보하려는 것이다. CEO의 지시가 말단 직원에게까지 24시간내에 전파될 수 있도록 사내 방송과 사내보,인트라넷과 같은 다양한 채널을 가동하고 있다. 노조는 아니지만 사원 대의기구인 노사협의회를 통해 경영정보를 공유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매분기 개최되는 정기 노사협의회에 최고경영자가 반드시 참석,경영현황 전반에 대한 정보를 공유하고 있다고 삼성측은 말한다. 노사협의회내에 각종 분과위원회를 운영하면서 인적자원 개발및 공정한 평가와 보상 시스템에 대해 노사가 머리를 맞대고 협의한다는 것이다. 일부에서는 여성및 R&D위주로 이뤄진 삼성전자의 인력구조상 노조 결성 자체가 쉽지 않을 것이라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이에 대해 삼성측은 무노조 경영에 대한 편향된 시각을 의식해서라도 종업원 복지와 인사의 공평성에 신경을 쓰지 않을 수 없다고 말한다. 모토로라,IBM,텍사스 인스트루먼트,쉘 등 경쟁관계에 있는 선진기업들도 무노조 경영을 통해 고도의 효율성을 유지하고 있는 만큼 삼성을 예외적으로 볼 필요가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특별취재팀=이봉구 산업담당부국장(팀장),강현철,이익원,조주현,김성택,이심기,정지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