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윤철 <경제부총리>에게 듣는다] "부실기업 빨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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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실기업 빨리 안락사 시켜야" ]
지난 15일 김대중 정부의 다섯번째 경제팀장으로 취임한 전윤철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63)은 '직선적'이라는 소리를 듣는다.
말을 할 때 돌려서 하는 법이 없다.
1980년 경제기획원 과장으로 공정거래법을 입안할 당시 전국경제인연합회 임원과 멱살잡이 일보직전까지 가는 '충돌'을 마다하지 않았고, 올해초 기획예산처 장관 시절에는 국무회의에서 학벌타파를 위해 학력기재란을 없애자고 주장한 교육부총리를 면전에서 면박주기도 했다.
그런 전 부총리지만 25일 서울 명동 은행회관에서 가진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는 신중한 모습이었다.
경기 속도조절 여부를 둘러싼 정책논쟁 등에 대해 "좀더 지켜보자"며 말을 아꼈다.
그러나 공정경쟁과 독점, 규제개혁, 노사문제 등으로 주제가 옮겨가자 분명한 어조로 '소신'을 피력했다.
[ 대담 : 이학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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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우리 경제 성장률이 잠재성장률을 웃돌 것이라는 전망이 잇따라 나오고 있습니다.
국책연구소인 한국개발연구원(KDI)까지 나서서 경기 속도조절을 주문하고 있는데도 정부가 미적거리는 것은 선거철을 의식하는 탓 아니냐는 얘기가 있습니다.
"나는 선거 때문에 경제정책을 한쪽 방향으로 정하는 것과는 거리가 먼 사람입니다.
경제에 낙관적인 부분도 있고 불확실한 부분도 있습니다.
수출과 투자실적이 5월초에 나오고 1.4분기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이 5월20일께 발표되면 정책방향을 어느 쪽으로 잡아야 할지를 결정할 것입니다."
-임기가 2년이나 남은 강영주 금융통화위원이 증권거래소 이사장으로 옮겨갔습니다.
한국은행 등에서 '재경부가 인사 숨통을 트기 위해 임기가 보장된 금통위원을 마음대로 인사한다'고 비판하고 있습니다.
"금통위원의 임기를 보장한다는 것은 '본인의 의사에 관계없이 인사조치를 할 수 없다'는 뜻입니다.
증권거래소가 강 위원을 희망했고, 본인도 옮기려는 의사가 있었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자기가 가고싶은 자리로 가는 것까지 막을 수는 없습니다."
-재경부와 금감위가 금융계의 주요 포스트를 나눠먹고 있다는 지적이 많습니다.
인사를 둘러싼 만성적인 잡음을 정리할 방안은 없는 겁니까.
"사회 전반적으로 이성을 찾을 때가 됐습니다.
공통의 원칙이 제대로 작동되지 않는 것이 문제입니다.
심지어 청와대 비서실에서조차 인사 잡음이 없지 않더군요."
-하이닉스 매각협상을 놓고 헐값 시비가 증폭되고 있습니다.
채권단 일부에서는 '차라리 독자생존하는게 낫겠다'는 말도 나오고 있습니다.
"기본적으로 채권단이 알아서 해결할 문제입니다만 시장의 불확실성을 제거하기 위해서라도 빠른 시일내에 이 문제를 털어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야 주가도 안정적으로 오르고 국가신용등급도 더 올라갈 수 있습니다.
독자생존 쪽으로 갈 경우 라이프사이클이 갈수록 짧아지는 반도체사업을 계속하기 위해서는 신규투자 부담이 적지 않을 것이라는 점을 채권단은 고려해야 할 겁니다."
-재경부 장관 취임식에서 노사관계를 유달리 강조한 이유는 뭡니까.
"국민의 정부 들어 노사 공공 기업 금융 등 4대부문 개혁을 추진해 왔는데 이중 노사개혁이 가장 부진합니다.
지난번 무디스가 우리나라의 신용등급을 두단계 올렸고, 피치와 S&P도 조만간 상향조정할 가능성이 높은데 노사 문제를 제대로 풀지 못하면 신용등급이 거꾸로 추락할 수 있습니다.
노동운동은 적법절차를 통해 이루어져야 합니다."
-지난달 발전노조 파업사태가 파국 위기로까지 치달았을 당시 대통령 비서실장으로서 강경 대처 방침을 주문했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우리나라가 21세기 선진국으로 가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노사 상생(相生)의 원칙을 확립해야 합니다.
예전에는 노사분쟁이 발생했을 때 모두가 적당히 타협했지만 이번에 불법파업은 안된다는 원칙을 관철시켰습니다.
나는 비서실장으로서 3천4백여명의 노조원들이 원대복귀하지 않으면 새로운 발전회사를 만들라고까지 지시했습니다.
불법파업은 앞으로도 용납하지 않을 것입니다."
-발전노조 파업사태의 원인은 공기업 민영화였습니다.
KT와 가스공사 등 대형 공기업의 민영화도 중요 과제이지만 지방자치단체산하 공기업들의 방만한 경영이 방치돼 있는 등 개혁 사각지대가 많다는 비판이 있습니다.
"지방공기업 민영화는 내가 기획예산처 장관을 맡고 있을 때 제기한 문제입니다.
당시 지방자치단체 교부금 등 예산을 연계시켜 공기업 구조조정을 강요했는데 단체협약 위반으로 고발도 많이 당했습니다.
마땅한 제재수단이 없는 상황에서는 지원제도를 활용해 통제하는 수 밖에 없습니다."
-경제부총리로 취임하신 이후 '시장친화적' 규제개혁의 필요성을 여러차례 강또?주목받고 있습니다.
공정거래위원장 시절 출자총액제한제도를 부활하는 등 기업들에 대한 규제 강화로 재계와의 관계가 껄끄러웠던 적이 있었는데 기업 규제에 대한 생각이 바뀐 겁니까.
"시장경제와 경쟁을 촉진하는 쪽으로 규제를 없애야 합니다.
정부의 기능은 크게 감시, 분배, 규제, 기업 등 네가지로 구분할 수 있는데 이중 규제와 기업기능은 하루빨리 없애고 감시와 분배기능은 확대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구체적으로 어떤 대목의 규제 완화를 염두에 두고 계십니까.
"해외자본을 유치하고 자기 책임아래 기업활동을 할 수 있도록 촉진하는 규제개혁이 필요합니다.
시장진입장벽 역할을 했던 규제들도 풀어야 합니다.
적대적 M&A(기업인수및 합병)가 허용돼있다지만 제약요건이 여전히 많습니다.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합니다.
금융과 보험쪽에도 현실에 맞지 않는 규제가 많습니다.
제조업과 서비스업 규제는 50%이상 풀었지만 아직도 문제가 많습니다."
-어떤 것들이 M&A 시장의 걸림돌입니까.
"M&A를 허용하면서 동시에 기업의 자기주식취득을 대폭 허용하는 것은 '병주고 약주는'식의 처방입니다.
기업주가 경영을 잘못하면 기업이 먹히는 건 당연합니다.
기업주는 기업의 자기주식취득이 아니라 경영을 잘하고 기업가치를 높이는 방식으로 기업을 지켜야 합니다.
지난 97년께 미도파가 적대적 M&A 대상이 됐을 때 기업들은 난리법석을 쳤습니다.
그때만 해도 내가 힘이 부족했습니다.
몇몇 대기업들이 적대적 M&A를 막기 위해 공동출자 등의 대응조치로 맞섰는데 '이건 안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결국 미도파는 쓰러지지 않았습니까.
안락사할 기업들은 빨리 안락사시켜야 합니다.
그대로 남아 있으면 산업 전체가 위험해질 수도 있습니다."
-현 정부를 '좌파적'이라고 비난하는 야당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개혁을 의도적으로 추진하고 있다는 불만이 많은 것으로 압니다.
그러나 시장의 실패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정부개입이 불가피합니다.
사회보장비가 지나치게 많다는 비판도 복지부문 예산이 재정의 8%에 불과한 사실을 감안하면 말이 안됩니다.
남미 국가들은 평균 40%나 되지 않습니까."
정리=현승윤 기자 hyuns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