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락 '칼' vs 저가 '방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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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시가 본격적인 조정 국면에 접어들었다.
국내외 여건 악화에도 불구하고 '차별화 장세'를 연출하며 버티던 증시는 뉴욕증시와의 동조화로 '하향편향성'이 강화되면서 노출된 악재를 한꺼번에 반영했다.
시장에서는 단기 급락에 따른 기술적 반등을 점치는 시각과 추가 하락을 전망하는 견해가 맞선다. 그럼에도 조정이 길어질 것이라는 데에는 대부분 의견을 같이하고 있다.
뉴욕증시 불안, 모멘텀 공백, 수급악화, 투자심리 냉각 등 증시를 짓누르고 있는 요인들이 쉽게 해소될 기미가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20일 이동평균선 등 주요 지지선이 붕괴된 증시에 보수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떨어지는 칼날'을 무리하게 잡기보다는 밑변을 확인하고 실적주를 중심으로 저가 매수시점을 저울질하는 자세가 바람직해 보인다.
◆ 심리적인 공황, 원인 점검 = 종합지수가 국내외 악재에 휩쓸리며 지난해 미국 테러 발생 이후 가장 큰 낙폭을 그렸다. 코스닥지수는 닷새 연속 급락세를 이으며 두 달 전 수준으로 복귀했다.
주가가 지지선을 찾지 못한 채 내림폭을 확대함에 따라 투매 양상이 빚어졌고 여기에 로스컷(loss-cut) 물량이 가담하면서 심리적인 공황 상태가 나타나기도 했다.
이 같은 폭락은 무엇보다 투자심리 위축에서 이유를 찾을 수 있다. LG화학의 LG석유화학 지분매입 결정으로 '신뢰도'와 '투명성' 문제가 불거지면서 코스닥시장에 대한 대규모 작전조사파문으로 인해 급랭한 시장분위기에 찬물을 끼얹었다.
또 최근 전개된 '차별화 장세'가 한계를 드러내면서 낙폭 확대에 일조했다. 실적을 발판으로 연일 사상 최고치를 경신하던 삼성전자, 현대차 등 업종대표주가 '재료보다 앞선 수급'에 속절없이 무너지자 시세에 대한 자신감이 급격히 무너졌다.
수급악화는 외국인이 초래했다. 외국인은 지난 10일 이후 최대 규모인 1,600억원을 순매도하며 하락을 주도했다. 그러나 외국인 매도 물량이 많았다기보다는 매수세가 실종되면서 낙폭이 커졌다는 게 대체적인 의견이다.
기관은 최근 주식형 수익증권의 자금 유출과 환매 요구 등으로 매수여력이 부족한 데다 개인은 적극적인 대응을 자제한 채 저가매수에만 치중하는 양상이어서 외국인 매물을 흡수하지 못했다.
이밖에 1조2,000억원이 넘는 매수차익잔고 부담, 콜금리인상 가능성, 2/4분기 기술주 실적 우려, 예상보다 기대보다 불리한 하이닉스 매각조건, D램 가격의 지속적인 하락 등 이미 노출된 악재도 약세장에서 재부각됐다.
◆ 동조화 강화, 모멘텀 공백 = 이미 알려진 재료까지 다시 떠오르며 시장을 압박한 데에는 지난주 삼성전자의 분기 실적 발표 이후 상승 모멘텀이 제공되지 않은 가운데 뉴욕증시와의 동조화 경향이 짙어진 영향이 크다.
뉴욕증시 다우지수와 나스닥지수는 각각 심리적 지지선인 10,000선과 1,700선을 위협받고 있다. 뉴욕증시 약세가 기업실적 악화에 따른 것일 경우에는 뚜렷한 실적회복을 보이는 국내기업에 별다른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미국 경기 회복에 그림자가 드리우고 있어 시각을 달리할 필요가 있다. 미국 3월 내구재 주문이 0.5% 증가할 것이라는 시장 기대와 달리 0.6% 감소한 것으로 집계되고 3월 경기선행지수도 예상치인 0.3%를 하회하는 0.1% 증가에 그쳤다.
미국 경제에 소폭의 반등을 거쳐 다시 침체한다는 더블딥이 나타날 가능성이 증가하고 있는 것. 미국 경기회복 지연은 국내 수출경기의 본격적인 회복이 늦춰질 것이라는 우려를 낳고 있다.
지난달을 기점으로 수출이 바닥을 친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지만 달러/원 환율이 4개월만에 1,300원대가 붕괴되며 연중 최저치를 갈아치운 상황에서 D램 가격 하락, 국제유가 상승 등 수출회복에 걸림돌이 적지 않다.
추세 전환을 위한 거의 유일한 모멘텀으로 여겨지는 해외 경기 회복과 그에 따른 수출증가가 기대 만큼 원활하게 전개되고 있지 않아 모멘텀 공백과 뉴욕증시와의 동조화가 상당 기간 지속될 상황에 대비해야 한다는 얘기다.
한편 이달 말과 다음달 초를 거쳐 발표될 예정인 3월 산업활동동향, 3월 수출, 기업실사지수(BSI) 등과 같은 국내 경제지표는 개선 추세를 이으며 밑변 강화를 도울 공산이 크다.
한경닷컴 유용석기자 ja-ju@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