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위원코너] "아예 임명하고 말지"

"반은 포기하고 시작하는 도전." 언제부턴가 정부출연연구소 원장자리에 대한 도전을 연구원들은 이렇게 표현한다. 정부에서 특정 공무원을 점찍으면 내부에서 아무리 잘해도 표결에서 동수(同數)밖에 못되는 원장선임제도를 빗댄 것이다. 원장인사에서 투표권을 행사하는 이사 수는 12명.해당 출연연구소가 소속된 이사회 이사장(국무총리 임명) 1명과 국무조정실장을 비롯한 관련부처 차관급 5명,그리고 민간인 이사 6명 등이다. 이런 구도에서 내부승진이 과연 가능할까. 여기서 '이사장'은 정부몫으로 여긴다고 하니 일단 고려하지 말기로 하자.그러면 정부가 밀기로 한 공무원이 가만히 있는다 치더라도 민간이사 6명 전원의 지지에다 정부차관들 중 적어도 1명의 반란을 끌어내야만 한다. 그러나 정부에서도 그냥 있을 리 없겠지만,민간이사 6명 전원의 지지는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게 정설.여기에다 정부 차관들의 반란은 더더욱 기대난망이다. '혹시라도'라는 실낱 같은 희망마저도 없애는 장치가 있다. 기막힌 '단기등재 이사제도'가 바로 그것이다. 원장 선임기간인 2∼3주 동안 기존 정부측 이사들 중의 한명을 해당 출연연구소에 연고권이 많은 부처의 차관으로 임시 교체하는 것.얼핏 생각하면 합리적인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소위 '반란의 부메랑'을 경고하는 강한 의미도 있고 보면 애초부터 정부측 반란은 생각조차 할 수 없는 것이다. 오는 10일을 전후로 이 정권에서는 마지막이 될,다수의 정부출연연구소 원장선출이 예정돼 있다. 여기에는 연구개발을 전담하는 이공계 출연연구소도 있고,용감하게도 '15년만의 내부승진'에 도전하는 과학기술정책연구원(STEPI) 등 정책전문 출연연구소도 있다. "차라리 꿈도 꾸지 못하게 정부가 원장을 임명하고 말 것이지"라는 자조(自嘲)의 소리가 이번에도 터져 나올까. 만약 그렇게 되면 현 정권의 연구원장 선임제도는 정권 초반부엔 정치권력의 욕심채우기로,정권 후반부엔 관료들의 욕심채우기로 얼룩지고 말았다는 평가를 피하기가 어렵지 않을까. 안현실 논설ㆍ전문위원 ah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