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코 무늬만 민영화.. 정치에 휘둘리는 국민기업

세계적인 철강기업인 포스코가 "정치역풍"을 맞아 위상이 크게 흔들리고 있다. 포스코계열사들의 타이거풀스코리아 지분투자로 단초가 드러난 "포스크-최규선게이트"관계는 유상부 포스코 회장이 지난2000년 김대중 대통령의 3남인 홍걸씨를 만난 사실이 확인되면서 파장이 확산되고 있다. 최근 미국 포브스지로부터 세계 최고기업으로 선정된 포스코에 적잖은 충격파를 던질 것으로 보인다. 당장 "이희호 여사가 유 회장에게 홍걸씨와의 만남을 부탁했다"는 발언으로 물의를 빚은 유병창 홍보담당 전무가 보직 해임되는 등 사건은 일파만파로 번질 조짐이다. 유 회장과 홍걸씨와의 만남을 주선한 주체가 누구인가에 대한 의혹까지 더해지면서 "국민기업"포스코의 기업 이미지는 물론이고 "성공한 전문경영인"인 유상부 회장의 이미지도 빛이 바랠 위기에 놓여있다. 이번 사건은 검찰수사 등을 통해 그 실체를 드러내겠지만 국민의 정부하에서도 기업이 정치적 입김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었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준 상징적인 사건으로 기록될 전망이다. 지난 2000년 10월 민영기업으로 거듭난 포스코가 정치권으로부터 시달리기는 공기업 시절이나 크게 달라진 게 없다는 얘기이다. 주인없는 알짜기업이다 보니 갖가지 정치적 유혹과 압력에 노출돼 있다. 포스코는 우선 체육복표사업자 선정 과정 등 각종 이권에 개입한 의혹을 받고 있는 최규선씨의 부탁을 받고 지난해 4월 계열사와 협력사 등 6개사를 통해 타이거풀스인터내셔널(TPI)주식 20만주를 주당 3만5천원,모두 70억원에 매입해 준 것으로 밝혀졌다. 당시 장외가 기준으로 2만~2만5천원에 거래됐다는 점에 비춰볼때 "외압"이나 "반대급부"가 있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이와 관련,최씨는 주식 매입 시점에 앞서 포스코에 대한 미국의 철강규제(세이프가드)완화를 위해 발벗고 나섰고 덕분에 포스코는 대미수출 기준으로 한해 6천만~7천만달러의 손해를 피할 수 있었다는 게 포스코측의 설명이다. 유상부 포스코 회장 등 포스코 경영진은 지난2000년7월 대통령 3남인 김홍걸씨 최규선씨 등과 만나 저녁을 함께 하기도 했다. 이 자리에서 최씨는 "사우디아라비아의 알 왈리드 왕자가 홍걸씨가 추진하는 벤처캐피털에 2억달러를 투자하려는데 포항제철에서 이를 검토해달라"고 요청했고 유회장은 포항공대 산하의 포스텍기술투자를 소개시켜 줬다. 포스코측은 유 회장과 홍걸씨 등의 만남이 이희호 여사의 소개를 통해 이뤄졌다고 설명했다가 하루 만에 이를 뒤집어 의혹을 증폭시키고 있다. 포스코는 또 김희완 전 서울시 정무부시장을 지난2001년1월 포스코 경영연구소 고문으로 영입해 지난3월까지 9천3백만원의 연봉을 제공하기도 했다. 김씨는 홍걸씨 최씨 등과 함께 체육복표사업자 선정 과정 등에 개입한 의혹을 받고 있다. 이런 가운데 포스코는 백궁.정자지역 개발 의혹에서도 휘말려 있다. 포스코계열사인 포스코개발은 지난95년6월 이 지역 땅을 2백80억원의 계약금을 주고 샀지만 97년7월 중도금을 납부하지 않아 계약이 해지됐고 결국 포스코개발은 계약금 2백80억원을 고스란히 날린 것. 이에 대해 일각에서는 여기에 지어진 주상복합아파트를 고위층에 특혜 분양한 의혹을 사고 있는 H사에 이 땅을 넘겨 주기 위해 여권 실세들의 압력을 받고 포기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그러나 포스코는 이에 대해 "사업타당성 검토 결과 무리하게 사업을 추진할 경우 계약금보다 더 큰 손실을 볼 가능성이 있어 계약을 포기했다"고 해명하고 있다. 포스코와 정치권과의 "악연"은 비단 이번만이 아니다. 포스코는 정권이 바뀔 때마다 통과의례를 치르듯 정치적 시련을 겪어야 했다. 이는 박태준 포스코 명예회장이 1968년 포스코를 설립할 때부터 가장 우려했던 일이다. 그가 박정희 전대통령을 설득해 공기업이면서 "포항종합제철주식회사" 체제로 창립했던 까닭이다. 5공시절 이순자 여사의 남동생인 이창석씨와 포스코의 관계가 대표적인 케이스다. 5공 청문회 결과 이씨는 권력을 등에 업고 포스코로부터 싼 값에 주문외 재고철강제를 받아가 시중에 판매하는 사업을 벌였던 것으로 밝혀졌다. 김영삼 전대통령 시절에는 박 명예회장 자신이 정치적 탄압대상이 됐다. YS를 대통령 후보로 밀지 않았다는 괘씸죄에 걸려 박 명예회장은 일본행을 택해야 했다. 무엇보다 박 명예회장에게 비자금을 전달했다는 혐의로 포스코 임원4명이 검찰에 불려다녀야 했다. 유상부 현포스코 회장은 당시 수뢰혐의가 씌워졌다. 이후 헌법재판소로부터 위헌판결을 받아 6개월을 복역하고 풀려났지만 포스코의 명예가 송두리째 흔들리던 시기였다. 정치권의 외풍은 민영화 이후에도 수그러들지 않았다. 지난해 4월 주총을 앞두고 유상부 회장이 경질될 것이라는 소문의 배경으로 정치권 실세의 입김이 거론됐다. 포봬?관계자는 "경영상의 하자가 없었지만 지난 98년 공기업 시절 선임됐다는 엉뚱한 정치적 논리가 개입됐던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유 회장은 올들어서도 정치권의 적지 않은 압력을 의식하는 얘기를 하곤 했다. 그는 미국에서 해외IR을 앞둔 지난 1월말 기자간담회를 통해 "정치적인 논리가 개입하지 않는다면 국내 어느 기업보다 투명한 후계경영구도를 구축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일을 계기로 민영기업 포스코가 어떤 행로를 걸어가게 될지 주목되고 있다. 세계 최고기업의 자존심을 살리고 동시에 기업경쟁력을 키워주기 위해서는 "기업은 기업인에게 맡기라"라는 업계의 요구가 새삼스럽게 들리고 있다. 김후진.김홍열.이상열 기자 ji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