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후아유'] 온라인속과 현실 세상 사랑은 일치할 수 없을까

네트워크 시대의 사랑은 게임처럼 즐기는 방식이다. 아바타(온라인의 자기분신)들의 대리전을 통해 서로에게 접근하고 상대의 주파수와 일치가 감지되는 순간,오프라인의 만남을 바란다. 게임의 흥미가 사라진다면 접속을 끊는다. 과거가 말끔히 지워진 온라인에서 새 만남을 시도하면 되니까. 흥미로움이 지속될 때까지만 허용되는 사랑. 끊임없는 변신을 요구받는 21세기의 생존법과 어쩐지 닮아 있다. 최호 감독의 신작 "후아유"는 인터넷으로 사랑을 검색하는 시대의 남녀들에 관한 얘기다. 현실보다 가상의 세계를 좋아하는 청춘남녀가 가상과 현실세상의 사랑을 일치시키려는 분투의 기록이기도 하다. 인터넷 채팅을 통한 만남이란 소재면에서 "접속"(97년)과 유사하다. 신작에서는 네티즌의 인격이 머무는 "아바타" 환경이 강조돼 가상과 현실속의 인격이 갈등하는 과정이 극적으로 포착된다. 수족관의 다이버로 일하는 인주(이나영)는 낯선 사람과는 대면하기 싫어하는 성격이다. 한때 국가대표 수영선수였지만 청각장애로 은퇴한뒤 낯가림이 심해진 탓이다. 때문에 가상세계의 채팅에 열을 올린다. 그녀가 어느날 채팅게임 "후아유"를 비방하는 글을 올리자 이 게임의 기획자 형태(조승우)가 호기심으로 그녀의 소재지를 알아내 현실에서 만난다. 인주와 형태는 이와 별개로 인터넷상에서 "별이"와 "멜로"란 아이디(ID)의 아바타로 교제를 갖는다. 형태는 인주가 온라인의 "별이"임을 알지만 인주는 형태가 온라인의 "멜로"인 사실을 모른다. 분열된 인격은 정체성의 혼란을 가져온다. 인주는 가상인물 "멜로"를 깊이 신뢰하고 자신의 마음을 열지만 실제인물 형태에게는 그렇지 않다. 그가 그저 게임으로 한몫잡으려는 속물로 비치는 까닭이다. 형태가 오프라인에서 자신의 정체를 드러냈을때 나영은 분노한다. 그러나 화내는 대상이 "멜로"인지,"형태"인지 스스로 헷갈린다. 그들을 위기에서 구하는 말은 "널 알아"다. 상대를 안다는 것이야말로 어쩌면 네트워크 시대의 최상의 선물이다. 인터넷세상에선 반복되는 만남과 헤어짐으로 오히려 상대의 진심을 알기 어려운 역설에 봉착했기 때문이다. 정보고속도로가 사람들을 스크린 앞에 붙잡아둠으로써 현실고속도로는 오히려 비어가고 있듯이. 사람들은 네트워크내에서 만나는 이미지들로 허기를 쉽게 채우고 있다. 두 사람은 사랑을 얻는 대신 "성공신화"를 향한 꿈을 접는다. 인주는 인어쇼를 히트시키려 하지 않고 새로운 직업을 구하기로 작심한다. 청각장애라는 신체조건이 다이버에게 좋지 않기 때문이다. 형태도 사무실을 더욱 줄여 이사한다. 카메라는 끊임없이 움직여 이들의 불안감을 반영한다. 반면 채팅순간에는 조용하게 가라앉는다. 사랑의 언어들이 교환되는 순간이야말로 안도감을 주는 유일한 순간이라는 의미가 함축돼 있다. 17일 개봉,12세 이상. 유재혁 기자 yoojh@hankyung.com